나의 이야기

높새바람

단풍들것네 2018. 7. 15. 08:20


어머니는 일본에서 태어나셨다.

해방 이듬해 귀국하여 바로 아버지를 만났으니 우리말이 서툴러 시집살이가 한층 고되었다는 말씀을 하시곤 했었다.

 

    '올라가서는 곤부 (공부) 열심히 하거라,  

    다음 방학 때는 고속버스 보다는 서우루 요쿠 (서울역)에서 안전한 기차를 타고 내려 오너라' 


어렸을 때부터 귀에 익어 나에겐 익숙했지만, 가끔 집에 들렀던 친구들은 어머니의 억양이 조금 생소했었다.

하지만 특정 음절 몇 마디를 제외하곤 별 다름없이 유창했으니 친구들은 고개를 갸우뚱거리기도 했었다.




국민학교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쯤이니 오래전의 일이다.

아이들과 놀다 돌멩이로 왼손 검지를 그만 내려쳤었다.

그 무지막지한 고통은 얼마나 끔찍했었던가,

다친 손가락은 맥박이 뛸 때마다 동시에 욱신거려 밤새 끙끙 앓았던 나.


   '얘야, 해찰 맞으면 (일에는 정신을 두지 않고 쓸데없는 짓만 하면) 이런 일을 당한다.

    생 손가락을 다치면 아주 아프단다, 

    그래도 시나부르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괜찮아질 것이다' 라며 꼭 안아 주셨다.

  

그때 다쳐서 빠진 손톱은 지금까지도 흉한 모습으로 왼쪽 검지에 남아있고,

한국 사람이지만 어쩔 수 없이 일본말이 마더텅일 수 밖에 없었던 어머니께서,

다정스럽고 다감해서 차마 잊을 수 없는,

우리 말인 '해찰 맞고' 그리고 '시나부르' 와 함께 꼭 안아 주셨던 어머니의 정겨웠던 품은,

반세기가 훌쩍 넘은 오래전의 일이지만 지금 까지도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노모는 올해 구순이다.




캐나다의 공용어는 영어와 불어이니 모든 것 (상품, 문서..) 에는 두 가지 언어를 표기한다.

그렇지만 공식적으로 그렇다는 이야기일 뿐, 

프랑스계 밀집지역인 퀘벡주를 제외하고는 모든 주에서는 대부분 영어만 사용된다.

내가 사는 이곳도 사실상 영어만 쓰인다.

 

인구가 오십여만 명 정도인 이곳에,

200여 개의 초중등학교 중 대략 20% 정도가 프랑스계 학교다.

프랑스계 학교란 불어로만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말이니 이곳에서 거의 사용되지도 않는 불어를 위해 엄청난 교육비를 투자하는 셈인가?


 

두어 시간씩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프랑스계 학교에서 겪은 일에 오늘의 고국 모습이 겹쳐져 종일 심산하다.


이 학교의 교사와 학생들의 구성은 흑인과 아랍 인종이 다수이고 - 아랍계 교장, 흑인 교감 다수 ( 교감이 여럿이다)

그 다음이 백인계이고 소수의 동남 아시아, 중국, 인도계 인종으로 보이는데, 

영어로 트랜슬레이션이 필요한 나를 제외한, 

그 잡다한 인종들이,

내가 알아 들을 수 없는 불어로 자유롭게 소통하며 배우고 가르치며 학교 내에서의 영어사용을 철저히 금하고 있다.


저 잡다한 인종들이 모국어를 제쳐놓고 불어로 소통하는 법을 배우는 이유는 무엇인가 ?



위키 (2010년)에 의하면 (List of languages by number of native speakers)

전 세계 인구 중 네이티브 스피커 언어의 비율이,

중국어 14%, 스페인어 5.9%, 영어 5.5%, 힌디어 4.5%, 아랍어 4.2%, 포르투갈어 3.1% 러시아어 2.4%, 일본어 1.9%, 독일어 1.4%

베트남과 한국어 1.2 %, 불어 1.1% 라고 한다.


지구 상의 인류를 100명으로 가정한다면 중국어를 사용하는 사람이 14명, 영어 6명,,,  한국어 1.2명, 불어 1.1명인 셈이니 

따지고 보면 우리말, 대한민국의 언어가 프랑스 말의 사용자보다 많은 셈이다.


그러나 모국어가 아닌 통용되는 (Spoken Languages In The World) 언어로는 불어가 우리말 보다는 수배 이상 많은 걸로 조사된다.

프랑스 식민지배를 받았던 지역 - 아프리카, 아랍, 동남아시아, 인도 지역의 인종들이 불어를 배제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고,

근본적인 이유는 프랑스 정부가 이전 식민지역에서 불어의 생명력을 위하여 그만큼 노력을 했었다는 증거일 것이다.


우리말의 사용국가는 5개 나라 (대한민국,북한,일본,중국,러시아) 라고 한다.

깜짝 놀랄 일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와 북한을 제외하면 모두 조선족으로 분류되는 우리 민족들일 것이다.

그렇다면 타국에서의 조선족들이 언제까지 우리의 말을 지키고 사용할 수가 있을까 ?

그들이 어려운 환경에서 우리의 말을 보존하기 위하여 대한민국은 얼마나 노력을 하고 지원을 하는지 모르겠다.



문화 창조란 무슨 재단을 설립해야 하는 것이 아니요,

일본, 중국, 러시아 등 해외에 흩어져 우리말을 놓치지 않고 있는 우리의 민족들을 위하여 작은 노력이라도 기울여야 하는 것이다. 


공무원 신분이지만 일정이 없으니 당연히 재택근무를 하고,

편리한 전화 이메일을 두고 왜 얼굴 맞대고 업무를 하느냐며 그것도 웃으며 기자회견을 하는 얼빠진 여인의 한마디에, 

다 같이 동조하며 따라 웃기만 하는 고위 공무원들이 아닌,


우리 모두 자기 위치에서 원칙을 지키고 양심을 따를 때,

문화 창조 나아가서 사회의 발전이 이뤄진다는 교훈을 새겨본다. 


나의 어머니는 샛바람이 불면 비가 온다고 하셨다.

샛바람 (동풍), 하늬바람 (서풍), 마파람 (남풍), 높새바람 (북풍)  - 동서남북을 뜻하는 우리말인 새하마노, 

나의 닉은 그래서 새하마노이다.  (Jan.15.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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