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뽑아 버려야지

단풍들것네 2018. 7. 10. 10:13


먼 친척뻘 누나가 어떻게 하숙집 전화를 알았는지 

매형 생일이니 집에서 저녁이나 같이하자고 연락을 했다.

 

가난한 하숙생에게는 먹는것 만큼 반가운 게 없다.

복학하고 하숙을 할 때니 사십 년도 넘은 오래전의 일이다.

 

연신내는 가난한 동네였다

누나네 집은 다닥다닥 붙은 낡은 주택들을 헤집고

또 좁고 가파른 언덕길을 한참이나 올라가야 하는 꼭대기다.

 

목덜미로 땀은 흐르고 

장학금이라도 얻을 요량으로 되지도 않는 공부를 한다고 할 때니

검정 비닐의 책가방은 무거웠다

조악한 책가방은 수시로 잠금장치가 빠져 걸핏하면 책이 쏟아지곤 했고.

 

땀도 나고

가방은 무겁고,

다리는 후들거리는데,

좁고 가파른 언덕길을 겨우 중간쯤에 올랐더니,

 

메말라 푸석거리는 좁은 길 위로 가느다란 물줄기가 쪼르르 흐른다.

목도 마른데,

위쪽에 우물이라도 있는가.

 

가는 물줄기를 따라 올려다보니

웬 여인이 좁고 가파른 언덕길에 얼굴을 푹 숙인 체 쪼그리고 앉아있다.

치마로 얼핏 가리긴 했지만 앉은 자리엔 흠뻑 젖은 물이 고여 흐르고 있다.

오줌을 누고 있었던 것이다.

 

밑에서 위로 올려다보면 가릴 것도 없이 그냥 눈에 확 들어온다.  

 

순간 얼마나 당황스럽고 놀랐는지

잠금장치가 빠져 책이 쏟아질 것 같은 가방을 끼고 허둥거리며   

여인을 지나쳐 언덕길을 뛰어 올라갔다.

 

내려다보니 그때까지 푹 숙인 체 쪼그리고 앉아있다.

 

아이고

얼마나 급했으면 길거리에서 사람이 오는 줄도 모르고.

 

비켜서서 한동안 내려다 보았다

 

 

 

신입직원,

특히 신입 여직원이 들어오면

회식 자리에서 소주 한 잔에 간뎅이 부풀어 

 

    ', 내가 말이야

     내 눈으로 전부 다 보았지.

     똑똑히 눈앞에서'

 

이렇게 개선장군처럼 떠들었다.

얼굴이 빨개진 여직원들은 어쩔줄 몰라 했고.

 

그땐 어리석은 줄도 몰랐다.

회사 말직을 무슨 완장처럼 여겼으니.

 

요즈음이라면,

나도 불특정 다수에 대한 성희롱으로 쇠고랑을 찼을까 ?

 

 

 

미투가 한창이라더니,

오늘은 미투에 걸려든 힘이 있었다는 어떤 양반이 재판을 받는다는 뉴스에

예전 나의 기억이 민망하다.

 

 

가지고

또 가졌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다만 힘없고 나약한 여성들에게 저지른 더러운 행위에는 

당연히 대가가 따라야 한다고는 생각한다.

 

약한 여자가 당했다는 것이 문제이지

무슨 시시비비를 가려야 하나.

 

그냥 뿌리를 확 뽑아 버려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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