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펫 공장에 다니는 조앤이 오랜만에 들렀다.
한가한 때라 가벼운 인사와 함께 요즈음 얼굴 본 지 오래된 그녀의 약혼자 랜디는 잘 지내느냐고 물었더니,
오늘 머리를 깎으러 갔다며 깔끔하게 변한 모습이 기대된다고 한다.
" 거참 잘 생각한 것 같다, 조앤 너도 시원하겠다 "
랜디는 철공소에 다니는 사십 중반인 거구의 사내로 그가 나타나면 매장 안이 가득 차는 느낌인데,
기름때에 전 작업복과 특히 허리까지 내려오는 치렁치렁한 머리로 얼핏 보면 거지 중에 상거지로 보인다.
만약에,
까까머리에 허옇게 핀 버짐과 동그랗게 도장을 찍어 놓은듯한 기계충 이라든지,
콧물에 반질거리는 옷소매와 타이어 표 검정 고무신을 기억하는 세대라면 미국산 원조 밀가루, 강냉이, 우유가루를 아실 것이다.
머나먼 태평양을 건너느라 방부제와 살충제가 뒤범벅 된 미국산 원조 밀가루, 강냉이, 우윳가루를
쌀보다 영양가 높은 서양사람들의 주식이라며 가난한 백성들에게 밥 대신 죽 끓여 먹으면 좋다고 했고,
머리 좀 기르고 짧은 치마 입고 멋 좀 내 보겠다는데,
서슬 푸르게 가위랑 줄자를 들고선 백주 대로에서 젊은 남녀들을 무슨 닭 잡듯 하던 것에 분노하기는 커녕,
단속에 걸리지 않은 것을 감사하게 여겨야만 했던 시절이다.
아마,
‘중석, 가발, 오줌, 은행잎, 오징어,, ‘ 이런 품목들이 수출품 중에서 큰 비중을 차지했었는데,
약품 원료로 쓰인다며 공중 화장실 (女 화장실은 확실치 않다?) 마다 지린내 진동하는 오줌받이 플라스틱 통을 모셔 놓았고,
양 떼들이 털깎기 하는 것처럼 우리네 여인들도 가발 수출을 위해 머리를 들여 밀었다.
짐승 가죽을 걸친 야만족에게 이 땅을 송두리째 떠받친 고려 때의 남정네들은 정수리를 밀어버린 변발을 한 적이 있었지만,
고래로 신체발부 수지부모를 정녕코 지켜낸 것은 이 땅의 여인들이었는데,
1960, 70년 대에는 어쩔 수 없이 너도나도 삼단 머리를 잘랐다.
덕분에 어떤 재미교포 출신 정치인은 거부가 되었다고 하지 않은가.
뭘 그렇게 오래전도 아닌 기껏 사오십년 전의 일,
그 혹세무민했던 시절의 고약하고 유쾌하지 못한 기억들이 랜디의 삭발로 되살아났다.
렌디는,
암 치료로 머리카락이 빠져버린 사람들의 가발을 만들기 위해 치렁치렁한 머리를 오늘 자른다고 한다.
퇴근길에 들르는 렌디는 쇳가루를 뒤집어 쓰고 장발에 손톱에는 시커먼 때가 잔뜩 끼었고.
고된 일과에 땀 냄새가 진동하여 그렇게 썩 달가운 고객은 아니다.
그런 그가 도네이션 (기부, 기증, 적선, 보시) 을 하기위해 사 년간 기른 머리를 오늘 자른다며
그의 약혼녀가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한다.
참 별스러운 몸 보시도 있다.
그런데, 어째 좀 부끄럽다는 생각이 든다.
( 베풀고 나눈다는 의미로 기부(寄附), 기증(寄贈)이 일반적으로 쓰이지만
개인적으로는 ‘베풀었다고 하는 생각조차도 내지 않는다’ 라고 하는 보시(布施)라는 말이
본래의 뜻에 가장 부합하는 말이라 생각된다.
적선(積善)이라는 말도 있긴 하지만 아무래도 거저 던져주는 것처럼 들리기도 하고,
요즈음은 자원봉사라는 말도 쓰이기는 하지만 )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자씨! 34년 만인가요? (0) | 2017.07.25 |
---|---|
Jewish Lightning (0) | 2017.07.24 |
되돌아 간다고 ? (0) | 2017.07.22 |
툭 하면 나는 눈물 (0) | 2017.07.22 |
360여 년 전 기록 - 오랑캐 (0) | 2017.07.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