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반바지와 민소매에 조그마한 백팩을 멘 아가씨의 짙은 색 선글라스가 햇볕에 반짝한다.
산발이 된 금발을 흩날리며 경쾌한 빠른 걸음이 어떻게 보면 수사자의 갈기 같아 보인다.
얼추 6 Km 쯤 되는 거리를 저렇게 출퇴근을 하는 모양인데, 한겨울을 제외한 출퇴근 전후 무렵에 족히 6~7 년은 보아온 광경이다.
조그마한 체구가 다부져 보이고 가무잡잡하게 그을린 어깻죽지와 장딴지가 멀리서 보아도 사뭇 건강해 보이기는 하지만,
무더운 여름엔 보는 것만으로도 괜히 진땀이 난다.
- 복잡한 전철에서 굽 높은 구두가 불편해도 드레시한 복장에 굽 높은 구두와 화장을 한 아름답고 섬세한 차림이
가장 보편적인 여성들의 출퇴근 모습이라고 생각했었던 때도 있었다.
아차!
키를 두고 자동차 문을 그냥 닫아 버렸으니 집으로 들어갈 수도 없고 어떻게 해야 하나?
여분의 키를 아내가 가지고 있으니 사업장으로 다시 돌아 갈려면 택시를 이용하던지,
아니면 열쇠 수선공을 불러야겠는데 손전화가 없으니 낭패다.
( 십몇 년 전 셀폰 3년 계약 해지 후 별 필요성을 못 느껴 이후론 셀폰이 없다 )
열 가구 정도 되는 이웃들은 대부분 오후 한낮 모두 텅 비니 전화를 빌릴 수도 없고 택시를 부르려면 꼼짝없이 공중전화가 있는
가까운 몰까지 가야 한다.
부실한 이 걸음으로 어림잡아 이삼십 분은 족히 걸릴 2 Km 가 넘을 거리.
몰까지 반 정도 왔을까 마침 좌측에 소방서가 보인다.
그래 저기 들어가서 택시를 좀 불러 달라고 해보자.
사무실 사람들 일제히 고개를 돌려보니 쑥스럽긴 하지만 가까운 곳의 소방관에게 사정을 이야기한다.
" 자동차 키를.. 셀폰이 없는데.. 근방엔 공중전화도 없네.. 택시 좀 불러 줄래.. "
이 친구 중얼거리더니 안쪽으로 쑥 들어가 버린다. 아니 저 녀석이 택시 좀 불러 달라고 했는데.
조금 후 제복 차림의 소방관이 나의 사업장까지 태워 주겠다며 소방서 미니밴을 끌고 오는데,
이 아주머니 소방관의 배가 엄청 부르다.
시트벨트가 불편해 보여 힐끔 했더니 빙긋 웃으며 다음 달이 해산 예정이라고 한다.
그녀의 업무일지에 ‘노숙자 구제’ 라고 쓰여질지 모를 일이지만 예상치 못한 고마운 일이다.
- 회현 지하상가 부근 횡단보도의 보행위반 집중 단속으로 남대문 경찰서에 끌려간 후.
남,여 사오십 명과 함께 두어 시간의 쪼그려 뛰기 후 장문의 반성문을 곱다시 썼었다.
왜 이따위 짓을 해야 하냐고 딱 부러지게 따지지도 못했다.
파출소나 관공서 같은데는 당연히 불편하고 껄끄럽고 구린내 나는 곳이라 생각했었던 때도 있었다.
Andrew Telegdi 는 6년 여전 열 몇 표 차이로 의석을 잃었지만, 자유당 소속 4선의 MP였다.
( Member of Parliament - 연방하원의원, 우리로 치면 여의도의 국회의원이다 )
그가 나의 고객으로 처음 왔던 날을 지금도 분명히 기억하고 있다.
누런 러닝셔츠에 허술한 반바지와 슬리퍼에 불그스름한 얼굴로 보아 분명 거나한 저녁 반주를 했음직한 구질구질한 중늙은이가
악수를 청하며 MP Andrew 라고 했다.
3선 당선 당일 초저녁에도 예의 불그스름한 얼굴과 꾀죄죄한 차림으로 왔었다.
아니 지지자와 측근들과 당선 축하연도 없는 모양인가 ?
( 일방적인 지지로 초저녁에 이미 당선이 결정되었을 것이다 )
" 헤이 앤드루, 연금이 꽤 될 텐데 복권은 왜 구입하냐 ?"
다른 고객들의 농담도 개의치 않으며 꼭 위닝티켓을 달라고 한다.
" 이 한심스러운 양반아, 내가 위닝티켓을 알면 너를 왜 주겠냐 ?"
국회의사당이 있는 오타와에는 가물에 콩 나듯 가끔 가는 모양인데 그것도 직접 운전하여 혼자서 간다.
물론 비서나 운전기사를 한 번도 본 적은 없다.
" 하이 준 ! 빈 컵 있으면 하나 줄래?"
덧붙이는 말씀이 오타와까지 장거리이니 재떨이로 쓸 것이라고 했다.
" 포장된 벌크로 팔지 낱개는 없어, 커피점에서 커피 한잔 사서 마시고 빈 컵을 쓰면 되지 않겠냐" 이 쪼잔한 친구에게 친절하게 덧붙였다.
- 지방으로 가는 만석의 국내선,
중년 신사가 앉은 첫 열만 유독 양옆이 비어 있었다, 도착지 공항 지점장은 최대한 허리를 꺾어 보였고 마중 나온 사람들
모두 한결같이 보통차림 들이 아니다.
국회의원이 연고지를 찾았다고 했다.
국회의원쯤 되면 차림새는 물론 뭔가 그럴듯해 보이고 또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었던 때도 있었다.
ATM 쪽으로 두어 번 들락거리는 아가씨의 거친 행동이 거슬려 얼핏 보니 양 눈가에 멍이 들어있고 ,
바깥 자동차에는 불량스러워 보이는 남자 아이들 서넛이 기다리고 있다.
" 아니, 저 아이가 무슨 일일까? "
자주 냉동식품, 정크푸드를 집어가는 뒤쪽 임대 아파트에 사는 스무 한두 살쯤 되는 Kristen Moore-Towers 라는 아가씨인데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팀 캐나다 페어 스케이팅 듀오 부분의 멤버로 출전하여 은메달을 거머쥔 아가씨다.
아주 조그만 키에 도통 웃지 않을뿐더러 조금 억센 인상으로 별 달갑지 않은 아이였는데,
소치로 떠나기 얼마 전,
지역신문을 보고 그녀가 올림픽에 출전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며칠 전의 지역신문 기사에는 그녀가 몇 년 동안 함께했던 스케이팅 남자 파트너와 더는 플레이를 하지 않기로 했다고 했는데,
무슨 일이 있기는 한 모양이다.
올림픽 은메달이면 대단한 것인데 임대 아파트에서, 매일 냉동식품에, ATM이나 긁어대고,
양 눈가에 퍼런 멍이나 달고 다니는 저 아이를 도통 이해할 수가 없다.
- 올림픽 메달리스트의 고향 방문은 경사이고 자랑스러운 일이었다.
커다란 현수막과 환영 꽃다발을 목에 걸고서는 양손 번쩍 흔들어대는 퍼레이드쯤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었던 때가 있었다.
거칠게 들락거리는 올림픽 메달리스트라는 아이의 행동을 지켜보며 이민 초기를 떠올린다.
조금은 못마땅한 듯 실눈으로 위아래를 훑어보던 선배 이민자들을 대했을 때의 묘하고 야릇했던 느낌은,
이민 연륜이 오랜 분일수록 심했다.
다를 바 없는 외모였지만 뭔가 모를 낯섦은 연변 조선족을 마주했을 때의 난뎃손님 같은 부자연스러움과 같은 것이었다.
대부분의 선배 이민자들은 어제 떠나온 것처럼 고국의 세세한 면면과, 어쩌면 고국 분들 이상으로 정치, 문화, 사회의
전반적인 모습과 실상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관심과 나름의 진단을 자랑스러워 했었다.
그렇지만,
예를 들어 새나라 자동차, 시발택시, 김포국제청사, 보릿고개 따위들이 메인스트림 이었을 시대의 감성과 사고로는,
지하실에 설치해놓은 노래방 기계의 최신가요를 빠뜨리지 않고 목놓아 불러 젖힐 수 있다 해도,
그이들의 시국론과 담론은 생기와 온기 없는,
단지 혼자서만 치르는 수능시험에 스스로 채점한 답안일 뿐이다.
‘ 습니다 ’ 를 ‘ 읍니다 ’ 라고 쓰고서는 무엇이 잘못된 것인 줄도 모르는.
인터넷의 보급으로 세계의 구석진 어떤 곳에 있더라도 서울 어느 한 곳에 있는 것과 다름없이 실시간으로 고국의 뉴스와
변화를 보고 느끼고 이해할 수 있는 세상이다.
나 역시 서울거리의 어느 육십 줄의 평범한 시민처럼 같이 호흡하고, 같은 감성으로, 같이 사고하고 , 같은 세대의 시공간에서
생활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렇지만 보고 느끼고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
어찌 서로 주먹질하고 어깨 부딪히며 의무와 책무를 방기치 않고,
변화의 차이를 실감할 사이도 없이 그냥 일상이 되어버리는 고국 분들의 삶과 같다고 할 수가 있을까.
얄궂고 묘하다.
다른 땅, 또 다른 문화를 흘겨보기만 하고 이전의 감성으로 벋대기만 했었는데,
한 땅, 동시대에서 공감하고 나누며 가까웠던 이들이 이제는 저만큼 훌쩍 비껴가 있다.
오래전 이민 선배들에게서 느꼈던 모습은 지금 나의 모습이었다.
또다시 되돌아 간다고 이 얄궂음이 바뀔까? (Jun,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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