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미물도 눈치가 뻔한데

단풍들것네 2017. 7. 15. 09:13

 아내의 수고 덕에 올해도 어김없이 앞 뒤뜰엔 여름 화초들이 가득하지만, 

정원 한쪽의 무궁화 몇 그루가 빠진 흔적이 못내 아쉽고 허전하다.

 

 오래전 우연히 무궁화를 발견하곤 반가운 마음에 풀 포기같이 가녀린 묘목을 몇 그루 구하여 꺾꽂이 겸해서 함께

다독거려 심었더니 어느새 성큼 자라 옆집 경계선을 따라 뒤뜰 개울가까지 벋쳤었다.

보살핌과 거둠 없이 키보다 훌쩍 커버린 생장과 철마다 잊지 않고 무더기로 피워내는 소담스러운 자태들이 대견스러웠었는데,

어쩐 일인지 이삼 년 전 몇 그루가 시들시들하더니 작년 여름엔 모두 고사하고 말았다.

 

 한 삽만 파면 개미와 달팽이가 셀 수도 없이 많은 땅이다.

이 녀석들이 뿌리를 갉아 못쓰게 하는 것 같아 살충제를 뿌리기도 하고 진흙성분의 토양 탓인 것 같아 부토를 섞어보기도 했었지만, 모두 말라버려 솎아낸 자리가 저렇게 비어 보이는 것이다.

  

 아내가 뒤뜰에 나설라치면 지푸라기를 물어 나르던 새들도 저만치 날아가서는 거동을 살피고,

들락거리던 다람쥐들도 인기척이 나면 그물망 뒤쪽으로 숨어서는 앞발을 모아 치켜들고 빤히 쳐다본다며,

덱 밑에 둥지를 틀고 화초와 정원수의 뿌리를 갉아대는 자기들을 아주 못마땅해 하는 것을 아는 모양이라고 했던 적이 있었다.

 

    “ 미물도 눈치가 뻔한데 어찌 식물이라고 거둠과 보살핌을 모를까 ”  


혼잣말처럼 나의 게으름을 탓하는 아내의 마음도 핀잔만큼이나 허전한가 보다.

 

 무궁화는 토양온도가 15~20 C일 때에 물이 잘 빠지지 않으면 입고병이 나무의 내부에 발생하여 수분이 올라가는 것을 막기 때문에 큰 나무라도 급속히 말라죽게 된다고 하니,

원인은 아마 옆집 지붕의 물받이 홈통 때문인 것 같다.

고장 난 물받이 홈통을 오랫동안 방치하여 내 집 정원 쪽으로 물이 흘러들곤 했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지대가 높은 앞뜰엔 두 그루가 살아남아 요 며칠 새에 꽃봉오리를 맺고 있어 조석으로 조심스럽게 살펴보는 중이다.



 

 무궁화는 여느 화초와는 달리 멀리서 조망하는 것이 제격이다.

노랑 꽃술에 보라색의 중심부가 소담스럽게 은은한 연분홍 송이를 받쳐주는 양이 어쩌면 성스럽기까지 하니,

나라꽃으로 삼았던 선인들의 안목에 감사할 따름이다.


 사실 무궁화는 관상용으로 그렇게 인기 있는 작물은 아니다.

화려한 색깔의 튤립이나 장미, 향기 짙은 라벤더나 라일락 보다는 우울한 보랏빛의 꽃잎이 시들고 둥그렇게 말려서 

한철 내내 낙화한 바닥의 어지러움과,

가까이 다가설 양이면 까맣게 엉겨 붙은 진딧물로 차라리 지저분하기까지 하다.

 

 이곳 캐나다에서도 무궁화는 어렵지 않게 대할 수 있다.

꽃봉오리가 크며 색감과 질감이 진한 듯 하여 고국의 그것과는 조금 상이한 느낌이지만, 이곳에서도 차라리 흔한 화초 축에 드는 편이다.

Hibiscus syriacus 라는 학명이지만 일반적으로는 샤론의 장미라고 한다.

샤론의 장미라고 하여 장미의 아종쯤으로 생각 할 수 있지만 내 눈엔 장미꽃과 그다지 닮은 것 같지는 않다.  

Hibiscus중 일부 종이 장미를 닮은 것이 있기는 하지만, 

그러나 무궁화는 전혀 아니다.

 

 아무렴 어떤가, 로맨틱한 이름이지 않은가. 

이스라엘 샤론 들녘에 피는 꽃에서 유래했다지만, 그보다는 샤론이라는 어느 여인과의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가 차라리 어울리지 않을까?

 

 무궁화 앞에 서서 가슴 가득 밀려오는 따스함과 이 애잔함을 어쩔 수 없는 향수와 삼천리 강산 우리나라 꽃이라는 애국가의 가사 탓으로 여기기에는 오늘의 이 상념이 내게는 너무나 소중하다.

 

 - 은연중 무궁화는 우리나라에만 피는 꽃으로 생각했다.  ( Aug, 20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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