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타샤, 나타샤"
매장 안을 뛰어다니는 계집아이를 부르는 젊은 여인의 맑은 목소리가 새삼 아이 엄마의 얼굴을 살피게 한다.
억양을 보아 러시아계 이민자인 것 같진 않아 보이는데 아직도 이렇게 낡고 오랜듯한 이름을 사용하는가 ?
나타샤 !
오랜만에 듣게 되어 이국적이긴 하지만, 이제는 예스러워 촌스러운 듯한 이름에 시간의 흐름이 되돌려지는 듯하여
옛생각에 빠져든다.
( 딸 아이의 이름이라며 봉투를 꺼내는 아버지는 매우 흡족하신 듯했다.
작명소 서너 곳을 들러 그중 마음에 꼭 드는 이름을 고른 것이라고 하셨지만,
흔한 듯한 그 이름을 아내는 표나게 당황스러워했고 아내의 반응을 혹 눈치채실 것만 같아 덩달아 당황스러워져,
서둘러 이름 (O僖)이 적힌 커다란 한지 봉투를 덥석 받았다.
둘째의 이름은 미리 지어 놓아야 하겠다던 아내의 다짐은,
역시 그만 아버지께서 손수 지어 오셨기에 끝내 다짐으로만 끝났고.
딸 아이는 할아버지께서 지어주신 제 이름이 촌스럽지 (아내 말로는) 않았을까 ?
그 흔한 영어식의 미들네임도 없이 그냥 우리식 이름 (O僖)으로 지낸다.
자식은 애물이고 보물이라던데,
그래도 내겐 벌써 서른 두 해나 입에 익은 아이의 이름이 고소하고 이쁘기만 하다. )
아련해진 젊었던 시간 속의 일,
그때는 먼 곳의 남의 나라 이야기를 나의 인생인 양 열심히 읽었고 밤새 소설 속으로 빠져 들게 했던 나타샤는
시베리아의 눈보라 치는 설원 속에 순수하게 그려졌던 어여쁘고 매력적인 러시아의 여인이었지 않았던가 !
오랜 시간의 무게로 구체적인 상황을 서술하기에는 가물가물해졌지만,
나폴레옹이 이끄는 프랑스군과의 전쟁이 모든 사람의 인생에 그림자를 드리우는 격동기에 펼쳐진,
러시아인의 정한을 두터운 책자 속에 그려낸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는,
雪原과 戰場의 대조가 뚜렷하여 장대하게 보였던 시베리아의 설원을 거닐고 싶다는 꿈을 꾸게 했고,
소설속의,
나무껍질이 흰빛을 띠어 ‘숲속의 귀족’으로 불린다는 자작나무 숲 역시 또한 동경의 대상이 되게 했었다.
(Google 에서 따옴)
그때의 나타샤가,
그 소설 속의 나타샤가.
아이로 환생한 듯 매장안을 저렇게 맴돌고 있다.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를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응응앙 울을 것이다.
(백석 -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전문)
오늘 고국의 뉴스는 카메라에 봄의 정취를 담는 상춘객들로 붐빈다는데,
나는 지금, 아직은 겨울의 끝자락에 잔설이 쌓여있는 자작나무 숲을 찾고 싶다.
한 걸음만 나서면 자작나무 숲이 지천인 이곳.
달, 그리고 별빛과 순백의 맑디맑은 햇볕의 영혼이 깃든다는 자작나무 숲을 거슬러 들어가 보자.
아마도,
거의 반세기를 앞서 살았던 백석도 나와 같이 시베리아 설원 속의 나타샤를 흠모했으려니,
어디서 응앙응앙 울어대는 흰 당나귀도 만나지지 않을까 ! (Apr.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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