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애꿎다

단풍들것네 2017. 7. 14. 09:16

 석양을 거슬러 운전하는 길이 만만치 않다.
서쪽으로 곧게 벋은 하이웨이엔 낮게 드리워진 햇빛으로 사위가 벌써 뿌옇게 변하여 선바이저로 가려 보지만.
역광과 함께 파고드는 빛이 부셔 자칫 차선을 놓칠뻔 하다.
떨어지는 해가 웬걸 이렇게 사나울까.
다음 휴게소가 육십 킬로미터 전방이니 어떻게 할까 ?
아무래도 무리인 것 같은 데 사고 내기 십상이지.
하이웨이를 잠깐 빠져나가 차라리 해 넘어가길 기다리는 것이 나을 것 같다.
 
 아내 차를 가지고 나올 때 선글라스를 챙기지 못했다.
아무 곳에나 놓고 다니는 전화기, 지갑 그리고 열쇠는 숱하게 당한 학습효과로 그나마 신경을 쓰는 편이지만,
선글라스는 그러질 못하여 꼭 이런 애꿎음을 당하게 된다.
수시로 자리를 떨 때마다 중요한 것을 빠뜨리고 덤벙대는 이 부주의는 도대체 언제쯤 고쳐질런가.
 
  서둘러도 시간 내 도착하기에는 이왕 틀렸다.
 
 사잇길로 빠져나와 길가에 차를 세운다.
추수가 끝난 빈 들녘의 지평선 너머로 떨어지기 직전의 해가 짙은 주황색으로 물들어 가고,
낮게 깔리는 저물녘의 그림자는 아주 길게 늘어져 사물의 구분도 모호해져,
검붉게 물들어 가는 들녘의 빈 트랙터에는 주인 잃은 외로움이 호젓하다.
바닷물에 번쩍이며 일렁이던 바닷가의 해넘이와는 또 다른 풍경.
 
 쓸쓸하고 서글퍼지기도 하는 가슴을 안고 길섶으로 가만히 내려선다.
어느새 짙은 주황의 검붉은 햇살이 온몸을 휘감아 손가락 끝까지 물을 들여 묘한 황홀감이 벅차올라 나도 모르게
신음 같은 탄성을 질렀다.



 
  나뭇가지 사이의 노을빛은 처연키는 해도 곱기만 한데,
  가슴 깊이 박힌 오랜 추억은 왜 이다지도 쓸쓸한가.

 어머니의 밥 짓던 모습이 떠오른다,
석양빛을 뒤로하고 퇴근하던 아버지의 자전거 바큇살이 만들어내던 커다란 그림자도 보이고,
할머니의 굽은 허리가 스쳐 가고,
오래전 한때는 가까웠던 사람의 애틋한 눈빛은 덧없는 아쉬움으로 번져 그만 와락 눈시울이 뜨겁다.


 영겁의 세월을 되풀이했을 찬란하도록 서러운 풍경,
핏빛 노을은 저렇게 서럽도록 저리운데,
이미 불덩이가 된 내 몸은 그리운 추억에 신열로 끓어 올랐다.
 
 잠깐 세상을 물들이고 번졌다가 사그라지는 빛,
우린 해넘이고 황혼이라고도 했다.
붉게 물든 저녁 노을은 먼지가 많은 날일수록 더욱 찬란하게 나타나는 단순한 빛의 굴절현상이라지만,
어느 석양인들 덧없고 쓸쓸하지 않을까.
 
     ‘해넘이’ 가 먹고사는 일인가 ?
      저녁노을을 한두 번 봤는감 ?


기세고 드센 아주머니들 성화에 끝맺음도 탈고도 없이 그만 줄여야겠다.


허 !
인간사 참 덧없어 보이기도 하고.    (Nov.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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