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등 하나뿐인 현관이 적막하고
인기척 없는 거실에 스탠드 불 하나뿐인 걸 보니
기다리다 아내는 잠이 들었나 보다.
저녁 식탁에 보기 드문 생선 부침개가 놓여있다.
어수선한 때이니 시장 가기가 쉽지 않다고 했는데
이 귀한 음식을 어떻게 장만했을까.
부침개를 데우니 비릿한 냄새 사이로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소금기와 생선 냄새가 배어있던 고향이 떠오른다.
어머니는
바람에 생선을 꾸덕꾸덕하게 될 때까지 말렸고
비린내를 즐기지 않는 나를 위하여 생선 부침개를 부치곤 했었다.
늦은 밤 마주할 사람 없는 쓸쓸한 식탁,
홀로 밥 먹는 일이 오랜 습관처럼 되었지만
늦은 밤에 문득 떠오른 어머니 생각에 아쉬움이 더욱 깊다.
삶의 길목마다 불쑥 찾아오는 아쉬움이 어디 한두 번일까마는
단출한 밥상에 놓여있는,
이제는 기억에도 가물가물한 생선 부침개를 대하니 더욱 새삼스럽다.
생선 부침개를 데우고 술 한 잔을 채우며
그래도 의미 있는 혼자만의 시간인 고향과 어머니 생각에 잠긴다.
요즈음에는 생선 부침개 한 접시에서도
또는 텔레비전 프로에서도 문득문득 어머니를 떠올린다.
아래는 오래전 텔레비전 프로를 보며 어머니를 생각했던 대목이다.
우연히 '인간극장'이라는 프로그램을 보게 되다.
오래전 방영된 '고마워요, 엄마'라는 부제의 5부작으로 구성된 작품이다.
시청률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장수 프로그램인 것 같다.
한국에 있을 때에도 '인간극장'이라는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는 것 같아 검색해보니
이전 것은 요즈음과는 달리 드라마였던 모양이다.
이제는 성공한 사람들의 벅차고 화려한 이야기보다는,
평범하게 살아가는 서민들의 생생한 삶의 이야기,
훈훈하고 때로는 가슴 저미는 사연도 많은 이런 프로그램이 마음에 와닿는다.
오늘 3회차 방영분을 보고 있는데,
궁상맞고 구질구질하게 어째 그런 것을 보고 있느냐고 핀잔이 심하다.
찌질하다고 한 것 같기도 하고.
거진 35여 년 넘게 함께했으니 구태여 말이 필요 없을 텐데
어째 저렇게도 날 모를까?
그리고 말투하고는.
부아도 나고 씁쓸하지만 대꾸 없이 볼륨을 조금 더 올렸다.
결혼초,
처가 식구들은 성격이 비슷하니 연분 어쩌고들 했었는데,
지나고 보니 지금은 참 많이 다르다.
오래 함께한 부부는 성격과 모습도 닮아간다는데,
우린 예외인 것 같다.
'고마워요 엄마’는 결혼도 하지 않은 52세의 아들이,
허름한 달동네에서 중풍과 치매를 앓는 82세의 노모를 모시고 살아가는 이야기다.
그런데 구도가 어째 요즈음 세대들이 마뜩잖아 할 것뿐이다.
‘달동네, 중풍, 치매, 노모, 노총각, 봉양…’
그러고 보니 아내 말처럼 궁상스러워 보이기도 하고.
아들의 보살핌을 받는 주름진 노모의 웃음이 해맑다.
모시고 사는 것을 희생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자연스러운 삶의 과정이며,
자신도 늙고 병들어 가지 않겠냐고 아들은 담담히 말하고 있다.
남은 2회분의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지 알 순 없지만,
방송의 영향으로 아들과 노모의 일상이 큰 변화가 없기를 바라고 싶다.
이민 오기 전 선친께서는,
아범아 꼭 가야겠느냐 라고 하셨다.
고통스러운 경험 없이 머리와 마음으로만 느끼는 눈물은
허울좋은 허상이고 감정의 사치일 터인데,
이젠 홀로되신 구순 넘으신 어머님 생각에 이 밤이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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