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얘야, 큰 아이야

단풍들것네 2020. 2. 25. 09:04

아이에게 들렀다 나오는 길,

모처럼 풀린 날씨라 하늘마저 푸르다.  


얼마 만에 보게 된 맑은 날씨인가.

따스한 햇볕으로 조금 가벼워진 마음이 반가워

양지쪽 계단 언저리에 가만히 앉는다.


두꺼운 겨울 차림이 거추장스러워

단추를 풀고 목도리도 풀었더니 시원하다. 


시원해서 상쾌한 기분마저 들어

멍하니 잠깐 햇볕 바래기를 한다.

아무 생각 없는 순간이 편하다. 


일요일 오후라서 

오가는 인파도 드물다.


늦은 오후의 햇볕은 

선글라스가 필요할 만큼 밝고 따뜻해서

회색 병동의 풍경이 

고요하고 차라리 평화롭기까지 하니

나른한 피곤함에 몸을 맡긴다.


자동차 유리에 그새 데워진 공기가 흔들린다.

아른아른 데워진 공기의 흐름이 꿈결같이 아름답다.


어디선가 나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 

무심결에 돌아보며 귀를 기울인다.


나를, 

분명 내 이름을 부르는데,

누가 나를 부르는 것인가.



'얘야,

 큰 아이야, 

 00아 ~'


'얘야,

 큰 아이야, 

 00아 ~'


아!

아버지.



친구도 

오래전의 직장에서도

이웃에서도

나의 아이들도

마누라도 

부르지 않던 나의 이름.


이젠

잊힌 내 이름을 

아버지께서 부르고 있다.



꿈결같은 음성이 귓가에서 멀어질까

한동안 눈을 감는다.

따뜻한 햇볕이 감미롭다.


아버지,

어떻게 기별도 없이 오셨습니까.


모처럼 따스해진 따사로운 기운이 사라질까 안타까워  

눈시울이 떨리니

눈을 떠는 게 두렵다.




햇볕이 반사된 자동차 유리에

오래전의 아버지가 계셨다. 


'아, 아버지'

'오냐..큰 아이야'


희끗희끗 바랜버린 머리

아버지를 많이 닮아있다.


 

아버지, 

내일은 또 추워진다고 합니다. 

그래서 햇볕 맑은 날이 좋습니다.

아이도 오늘은 조금 차도가 있어 보이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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