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짧았던 상담

단풍들것네 2018. 7. 24. 08:43


두어 시간의 상담을 끝내고 되돌아 나온 낯선 거리. 

어느새 계절은 바뀌어 가고 있는가, 늦은 오후의 햇빛이 부시다.

 

별반 기대하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예약을 취소한다는 찜찜함과 긴 망설임 끝에 찾았던 상담쎈터.

오래된 가정집 그대로인 외양과는 달리 깔끔한 내부는 바깥세상과는 담을 쌓은 듯 분주하지

않아 조용했고 그래서 더욱 아늑했다. 

두어 달 전쯤, 패밀리 닥터는 나의 진료를 카운셀링 센터로 넘겼었다.

습관처럼 찾아오는 두통의 원인을 찾아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장문의 설문지를 검토하던 꽤 나이 들어 보이는 여의사는,

나의 이야기에 자신의 이야기를 이따금 덧붙이기도 했다. 

온화한 표정 뒤에 순간순간의 날카로운 시선이 훑어보고 있음을 느낀다.

가치관, 나름의 자존감이 이 서양 여인 앞에서 조금씩 흔들리는 것 같아 안타깝다. 

 

나의 기대와 바램이 원인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인가,

내 삶이 그렇게 가벼웠더라는 말인가.

 

단답형으로만 이루어졌던 언어소통의 문제라기 보다는, 

아직도 녹아들지 않은(않으려는) 마음가짐 탓이라고 우리는 힘들게 인식을 같이했다. 

고작 십칠 년의 세월이, 사십오 년을 살아왔던 곳에서 부대끼며 그냥 나의 것이 되어 버린

이 질긴 아집을 무슨 수로 바꿀 수가 있단 말인가.

 

아내의 권유로 떠났던 두어 달 전의 여정이 오랜 시간이 흐른 것 처럼 여겨진다. 

약속 날을 잡자는 카운셀링센터의 전화를 받고서는 기겁을 했던 나의 아내.

제발 걱정 말고 며칠 쉬고 오라며 등 떠밀려 나섰던 길.


일상의 것들에서 잠시 내려와 나를 되돌아 보고자,

어둠이 드리워진 들판에서, 

궁기 풍기는 모텔 파킹장의 작은 갈라진 틈새에서도 보고 느끼고 교감하려 했었다.

황홀한 저녁노을에 넋을 잃기도 했었고,

끝 가늠할 수 없는 호숫가에서 깃털 하나 만큼도 아니 되어 보였던 자신을 바라도 보았었다.


헤픈 말에 묻히어,

내 마음 하나 다스릴 여유한 점 찾지 못했던 등딱지 같은 아집에서 벗어나,

숨 쉬고, 쉬어야만 하는 내 마음의 실체를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자, 움켜 쥐어야만 전부가 아님을.

고집스러운 울타리를 버리고 조금은 여유로운 시선을 가져보자,

분별없는 어리석음도 이젠 풀어놓자고 다짐도 했었었다...



대부분 사람들은 조금씩 아픔을 가지고 살아간다며,

필요할 땐 망설이지 말고 찾아오라는 악수에서 내 손보다 더 큰 손바닥을 느낀다.

 ‘특별히 처방 약은 필요치 않아요’ 라는 음성이 한참 먼곳에서 들리는것 같다.

그래, 이 두통이 옹졸한 내 탓이라는 말이겠지.

 

하지만,

무슨 모질 연의 끈으로 이곳에서 이 낯선 서양 여인과 이런 상담을 해야만 했을까?

마음은 종일 을씨년스럽지만,


늦은 오후의 햇볕은 따갑기만 하다.     (Aug.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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