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짐승이 자주 눈에 뜨여 날씨가 많이 풀렸다고 느꼈는데 그만 이른 아침 출근길에 야생 토끼 한 마리를 치었다.
바로 앞에서 도로를 가로지르는 녀석을 발견하고 재빨리 브레이크를 밟았지만 어쩔 수 없이 지나쳤다.
순간 멍했지만 이미 저질러진 일.
내려서 살펴보다 그만 못 볼 것을 보고 만다.
진땀이 나고 욕지기가 나오지만, 손에 묻을까 조심하며 나뭇가지를 이용하여 갓길 밑으로 밀쳐버리고 낙엽을 덮어 주었다.
호수를 따라 길게 벋은 이 도로에는 군데군데 자동차에 치인 들짐승의 사체를 쉽게 볼 수 있다.
가끔 까마귀가 내려앉은 그곳을 지나칠 때마다 매우 언짢았는데, 그만 내게 이 같은 곤욕스러운 일이 발생했다.
이른 아침이라 오가는 차가 뜸하니 그나마 뒤처리를 해줄 수 있어 다행이다.
주유소에 들러 세차를 하고 비누 칠한 손도 뻑뻑 소리 나게 문질렀지만, 종일 찜찜하고 불쑥불쑥 언짢아진다.
들짐승의 목숨을 빼앗았다는 죄책감보다는,
이른 아침의 일진 사나움과 자동차 바퀴를 통해 전해왔던 그 뭉클한 느낌이 아주 진저리 쳐지게 싫은 까닭이다.
자동차의 유리창에 들러붙는 곤충은 블레이드로 긁어내며 귀찮게 여기고,
팔뚝에 내려앉는 모기는 날아가는 놈도 좇아가며 잡아야 직성이 풀리고,
현관 앞에 기어 다니는 개미는 집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보이는 대로 밟아대고,
카운터의 파리는 요놈의 자식이라며 파리채로 사정없이 내리치는 주제이니,
따지고 보면 살생을 한 두 번 한 것은 아니다.
심각해하지 말고 빨리 잊어야겠다.
그렇지만 이즈음에는,
사소하지만 이런 일상에서 벗어나는 일을 당하면 평정을 찾기가 쉽지 않다.
사업장에서 무례한 손님과 맞닥뜨리기라도 하는 날에는 정도가 심하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생각을 문득 한다.
삶의 지혜와 연륜이 깊어지는 것이 나이 듦이라고들 하지만, 나에게는 걸맞지 않은 말이다.
작은 것에 소심해져 마음 쓰고,
조금씩 비껴가 질 수밖에 없는 소소한 것들에 버거워하며,
번거롭고 부산스러워 보이는 것의 일상에 못 견뎌하며,
부대끼고 거북스러워한다.
이제는 새로운 만남보다는 차라리 세속과 단절된 사람들의 삶에 눈길이 간다.
설혹 낯선 이가 차갑고 따가운 눈초리 또는 선한 눈매를 가졌다고 그러한 것이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유혹과 욕심이 깃들지 않는 있는 그대로 피었다 지는 곳,
세상의 무관심이 고맙게 여겨지는,
애써 소리 냄 없이 구태여 의미를 내세우지 않는 그런 곳을 찾아 떠나는 혼자만의 시간이 아쉬워진다.
사람이 그립다는 생각이 들 때까지 끝나지 않을.
아직은 누구의 도움이 필요치 않은 때이다.
조로했다는 손가락질받더래도 이제라도 떠나고 싶다.
너무 많지는 않은 나이,
내 몸 하나 건사할 수 있을 정도인 이때 혼자 나서보는 길은 나름의 의미가 있지 않을까.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소중한 것 (0) | 2017.07.04 |
---|---|
1874년식 쿠키 한조각 (0) | 2017.07.03 |
귀한 향이었네 (0) | 2017.07.02 |
바람 風. 계집 女, 서로 相 (0) | 2017.07.02 |
재혼 (再婚) (0) | 2017.07.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