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귀한 향이었네

단풍들것네 2017. 7. 2. 12:43

 덱 밑으로 작은 새들이 잔가지를 물어 나르느라 분주하다.

밑자리만 조금 자리를 잡았으니 오늘쯤 둥지 틀기를 시작했나 보다.

매년 어김없이 둥지 틀기를 시도하는 조그마한 새로 어떤 종류인지 철새인지 텃새 인지도 모르지만,

조그마한 체구에 깃털이 화려하고 재빠른 녀석들이다.

한 녀석이 잔가지를 물고 와서는 갸웃대며 잠깐 머물다 날아가면 연이어 한 녀석이 또 잔가지를 물고 온다.

새 생명의 탄생을 준비하는 부부 새일 것이다.

 

 십 오육 년 전쯤 집을 짓고 이사했던 그해 봄,

저곳에 새들은 여남은 정도 되는 둥지를 틀고 부화를 했다.

온종일 덱 밑으로 새들이 드나들어 평화로웠던 그해 봄철 내내 녀석들의 흰 배설물을 치우느라 아내는 꽤 고생을 했고,

그해 이후 저곳은 더 이상 새들의 보금자리가 되지를 못했다.

둥지 틀기를 시도하는 낌새만 보이면 아내는 여지없이 긴 막대기로 새들을 쫓아내고 물 호수를 틀어 흔적들을 말끔히 씻어내며,

해충이나 벌레가 끼일 것을 걱정했고, 바닥에 쌓이는 배설물들을 참아내지 못했다.

 

 뒤뜰과 연이어진 곳은 개울이 흘러 아담한 숲이 시작되는 곳이다.

이때쯤이면 신록으로 물들어 아늑하고 풍요로운 곳,

저 풍성한 숲을 지척에 두고 굳이 부서짐과 내쫓기는 서러움을 당하면서,

새들은 왜 저렇게 가망 없어 보이는 노력을 포기하지 못하는 것일까.

부화 철을 놓치고 말 텐데.

그러나 새들도 한 열흘 후쯤에는 결국 포기 할 것이니, 아내의 노력을 말릴 순 없다.


 

 늦은 점심을 들고 사업장에 나왔더니 그만 아내가 질겁을 했다.

 

   " 아이고, 아둔해도 정도가 있어야지,

     아니, 옆에 다가갈 수가 없네.

     당장 나가요. "

 

대꾸도 못 하고 머쓱해져 그만 밖으로 나왔다.

신경 써서 양치질도 했고 가그린도 두어 번 했었는데 별 소용이 없었나 보다.


 

 전날 저녁 무렵 ㅂ 선배 부부께서 들렀다.

 

   " 이 보시게, 나 바빠서 그냥 가네. "

   " 좋아하실 것 같아 조금 가져왔는데 .. "

 

 급히 어딜 가는 길이라며 인사할 겨를도 없이 커다란 보자기를 놓고 갔었는데,

향이 진한 산마늘이 한 보따리 가득했고,

칠순 넘은 부인께서 햇볕에 얼굴이 그을렸다는 말씀이 수줍은 소녀인 양 고왔다.

ㅂ 선배는 대학 십삼 년 선배로 한국보다 이곳에서 지낸 세월이 훌쩍 넘어서는 오랜 이민세대이다.

매년 철마다 두 분이 봄볕에 얼굴 그슬리며 단속의 위험도 마다않고,   

먼 곳의 숲으로 발품을 하여 채취한 귀한 산마늘을 이다지 푸짐하게 놓고 간 것이다.

 

 저녁 내내 아내는 넉넉한 그 마음을 고마워했다.

살짝 데쳐야 할까, 김치를 담가 볼까, 겉절이 해서 조금만 숙성 시켜볼까, 향이 진하니 주말 저녁에만 먹어야  할텐데 하던 것을,

점심때 그만 그 진한 향의 유혹을 이겨내지 못하고, 

고추장과 된장에 생으로 몇 줄기 찍어 맛을 보는 우를 범했다.

먹을 땐 좋았지만, 

톡 쏘는 향이 좀 진하다는 생각을 하긴 했다.

 

 봄이 왔다.

이번 겨울은 유난히 길고 매서웠었지,

이 소중한 계절에,

산마늘, 고사리, 취나물, 미나리 쌉쌀한 향에 흠뻑 취해도 될듯하다.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소중한 것  (0) 2017.07.04
1874년식 쿠키 한조각  (0) 2017.07.03
바람 風. 계집 女, 서로 相  (0) 2017.07.02
조로 (早老)  (0) 2017.07.02
재혼 (再婚)  (0) 2017.07.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