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재혼 (再婚)

단풍들것네 2017. 7. 2. 12:18

 김 선생께서 이혼을 했다고 한다, 아니 이혼을 당했다고 한다.

한동안 적조했던 탓에 뒤늦게 전해 들은 소식이 놀라울 수도 있으련만 별 반응 없는 무덤덤함에 말을 꺼내던 아내는 객쩍은 듯 물끄러미 바라본다.

응답했다가는 괜히 민망해져 어색해질게 뻔하다.


  " 상처 한지가 얼마나 됐다고 그렇게 서둘더니,

    애들이 반대하면 말았어야지,

    조강지처가 일구어놓은 살림이 풍비박산.. "


쉴 사이 없이 쏟아질 것이 당연한 수순, 김 선생을 아주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아내다.


 

 김 선생의 재혼 이야기를 들었을 때 어째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살다 보면 이게 뭔지는 확실치 않지만, 흔연히 수긍하기엔 찜찜하고 딱히 거슬리지 못하고 흘려보내는 때가 있긴 하다.

김 선생의 재혼이 그런 경우인데,

그렇다고 황당한 점쟁이들처럼 예지나 통찰력을 가졌다는 것은 아니지만 아니라는 느낌이 불쑥 들었다.  


 그러고 보니 이전에 줄기세포로 온 나라가 떠들썩했던 사건도 지금의 느낌과 비슷한 경우라 할 수 있겠다.

오늘의 주제와 조금 빗나가는 이야기이지만 이왕 말이 나온 김에 이 줄기세포 이야기를 좀 해야겠다.

그 양반 덕에 나 또한 이국땅에서 개망신을 당했었으니 한 마디쯤은 해도 될 것이다.

 

 한동안 노벨상감이라며 과학계와 전 국민의 관심을 받았던 사건이었으니 새삼 거론한다는 것이 좀 그렇지만,

그분 무던히도 뉴스를 타지 않았던가.

이 양반의 뉴스를 처음 접했을 때 이건 아니라는 느낌은 지금 김 선생의 재혼 건 보다 더했다.

아니, 연구실에서 밤낮이 모자랄 텐데 웬걸 저 다지도 사진 찍는 것에 공을 들이는 것일까 ?


아무튼, 

서울의 모대학교와 영국의 어떤 곳과 조인하여 줄기세포를 이용한 치료를 시작한다는 뉴스는 임상에 참가할 환자들을

온라인으로 등록하겠다는 이야기였고, 대상에는 하반신 마비 환자도 포함되었는데,

마침 고객 중에 아들이 산악자전거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된 사람이 있어 희망 있어 보이는 기적적인 뉴스를 그에게 전할 수가 있었고,

당장 온라인으로 등록하겠다며 그는 매우 고마워했다.

그런데 얼마 후에 이 사건이 논문 조작으로 밝혀졌으니.

그래, 

애당초 도를 넘은 것 같은 미디어 출연과 그래서 너무 반질반질하게 보였던 그 양반의 얼굴을 보았을 때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었는데,

빌어먹을 일이었다.




 아마 그즈음에 김 선생께선 육십 중반 정도의 연배였을 것이다.

한인들이 많지 않으니 대충 위아래 십 년 정도는 섞여서 가끔 점심도 같이했던 사이다.

부인을 간암으로 보낸 그의 상심을 헤아려야 한다며 한동안 매우, 자주 모임을 가졌는데,

의외로 활기찬 그의 모습에 내심 의아해하기도 했었고, 

김 선생도 분위기를 위해서였는지 모르지만, 자신의 건강함을 새삼스럽게 회중에 넌지시 던지기도 했었는데,

한참 후에나 깨달았으니, 

그의 건강이라는 것이 재혼을 위한 중매를 부탁하는 에둘러 한 이야기였다는 걸. 

 

 새삼스럽게 머리 염색도 하며 거동이 예사롭지 않아 보이기도 했고,

주빈이었던 그가 갈수록 점심 모임도 별반 관심을 갖지 않고 하여,

모임도 자연스럽게 뜸하게 될 무렵이 아마 상처를 한지 일 년쯤 지났을 때였는데,

미 시민권자인 오십 초반의 초혼인 여성과 그이가 재혼을 했다. 

새롭게 맞이한 분의 자잘한 요구와 결혼식은 꼭 치러야 한다고 해서 아이들의 반대에도 개의치 않고 결혼식을 치렀고,

김 선생 께선 각종 서류에 변호사비용도 꽤 지불했을 것이다. 


 그 김 선생이 이혼을 당했다.  


 곤욕스러운 일이다.

오십 줄만 넘어서면 전철에서 잽싸게 빈자리 차지하는 것에도 염치가 없어지는 여인네들의 한결같음에,

여인들에 대한 몽환도 깨어진 지 오래 전의 일이었을 것이고 또한 그이도 모르진 않았을 텐데,

왜 재혼이라는 것을 마다치 않고 더욱이 손수 간택까지 하여 늘그막 하게 어려운 처지가 되었는지.

 

 세상의 절반인 여인네들 탓인가,

재혼이라는 놈이 문제인가,

늙어서도 한 이불을 꼭 덮어야만 한다는 남녀의 문제인가 ?



거 참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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