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잔뜩 난 큰 목소리를 내고 있는 아내의 통화가 거슬린다.
그만 얼굴이 찌푸려지는 걸 꾹 참고 통화 끝나기를 기다렸다.
다음 주에 얼굴 맞대고 따져서
거래처를 당장 바꿀 것이라는 아내를 진정시키고,
거래처 매니저에게 메일로 연락을 했더니
미안하다며 다음 주에 크레딧을 주겠다는 응답의 메일을 즉시 보내왔다.
매주 장거리 운전을 하여 물건을 직접 확인하는 아내는
꼼꼼한 성격 탓에 거래처와 마찰을 가끔 빚는데,
오늘은 수량도 많이 부족하고 물건도 바뀌어 큰소리를 낸 것이다.
실망스러운 처신이다,
큰 목소리로 해결될 일이 아닌데..
요즈음 부쩍
쉽게 감정을 드러내며 목소리를 높이는 정도가 심해서 아예 습관이 된 것 같아
마주 대하기가 불편한데,
이런 상황이,
그만 불편하고 탐탁지 않게 여겨지는 나 자신에게도
되려 화가 치올라 아주 언짢은데,
아내에 대한 실망감이 쉽게 가시질 않을 것 같아
우울한 마음에 길을 나선다.
아내의 처신을 어리석다 여기는 이 마음은 무었일까?
파머스 마켓에서 벼룩시장이 함께 열리는 날이다.
사람들이 많이 모여 꽤 흥청거려
일부러 복잡한 인파 사이로 기웃거려도 보지만
이내 흥미를 잃고 만다.
휴대폰 보호용 지갑이 보이길래 하나 살까 망설였지만
싸구려 물건 집어왔다는 소리를 분명 들을 테니 ..
건물 한편의 밧줄에 메여있는 말이 머리를 좌우로 흔들며 몹시 불편한 모습이다.
입에 물린 자갈이 불편한 것일 테다.
푸루룩 소리를 연신 내며 휜 거품을 잔뜩 물고 있다.
아직도 중세기의 생활상을 영위하는 메노나이트라는 사람들이
파머스 마켓이 열리는 장날에 운송수단으로 사용하는 마차인데,
신앙과 믿음이 종교를 넘어 삶 자체가 되어버렸다는 사람들,
믿음만큼 동물에게 베푸는
배려와 여유를 가졌으면 좋으련만 실망스러운 모습에
그만 시장 구경할 마음이 사라졌다.
The Painted Veil ,
서머셋 몸의 소설이 원작인 영화로
아내에게 복수하기 위해 콜레라가 창궐한 중국 오지로 발령을 자원하는 남자 주인공이
사랑에 배신당한 남자가 얼마나 차갑게 변하는지,
복수와 용서라는,
처연해서 더 아름답게 여겨지는 슬프고 애절한 로맨스다.
콜레라에 걸려 죽어가며
불륜을 범한 아내에게 행했던 복수를 용서해달라는 남자 주인공의 마지막 모습이 떠오른다.
페인티드 베일 이라는 영화에서처럼 아내에게 용서를 구하는 남자가 되지는 못하더라도,
아무 말 없이 벤치에 앉았지만
그냥 편안한 노부부처럼 되지는 못하더라도..
조금 탐탁지 않고 불편하더라도
거슬리는 마음만은 품지 않게 되면 좋으련만,
아내의 실망스러운 모습이 몹시 불편해서
종일 우울한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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