몆주째 목이 잠기고 코밑까지 헐었다.
남보기에 흉하기도 하지만,
이게 보통 불편하고 고통스러운게 아니다.
기침할 땐 온 정신을 집중해야 할만큼 목안의 고통이 심하니
기침 한번에 기운이 모두 빠져 나가는 것 같네.
아고오,
진짜 힘들어서 몬 살겄다.
감기는 잘 묵어야 한다니까,
세 끼니는 꼭꼭 챙겨 묵어야 할낀데...
욕실안에 수증기가 자욱하게
뜨거운 물을 가득 받아
목안을 헹구고
헐은 코속도 살그머니 씻어 내니 한결 시원하다
조심스럽게
카아악~
피이잉~
기침도 하고 막힌 코를 풀었더니 이제 좀 살것 같은데
욕실문을 벌컥 열어 제낀 마누라,
사정없이 신경질을 낸다.
'에구, 더러워서 몬살겠네,
온 집안이 울리도록 이기 뭐 하는 짓이고'
내 이럴 줄 알고
안방 욕실이 아닌 다른 쪽 욕실을 사용했는데.
뜨거운 수증기에 잠깐 따뜻해진 몸이
그만 푸석푸석하다.
'아이구, 야야,
니 꼴이 그기 뭐꼬
아침도 몬 묵고 댕기나'
'엄니,
요새 밥굶는 사람이 어디 있능교'
'긍께,
내말 죽어라고 안들은 니 잘못이다.
옵빠 옵빠 하고 따라 댕기던 영자를 그리 싫타더니'
'엄니,
지난 일을 왜 또 그라신다요.
그 가시나는 예비고사도 떨어졌당께요'
'야가 뭐라카노,
공부 좀 몬해도 밥묵고 사는데는 지장없다.
갸가 마음씨 곱기로는 천상 여자였는데'
'근데 나가 세상에서 제일 속 뒤집히는 기
니가 뭐씨 그리 몬나서
쥐 잡힐 듯 이꼴을 하고 사노'
어머니는,
딸아이가 중학생이 될때까지
며느리가 못마땅 할땐 엄니 친구 딸, 영자를 입에 올렸고,
엄니 친구는
딸 영자가 좋은 학교 갈라꼬 재수를 했다고 했다.
근데,
생뚱맞게
영자 그 가시나 생각이 갑자기 왜 떠오르노,
나도 잘 하진 몬했지만,
진짜로 그 가시나,
공부를 몬했다.
뿌연 수증기에 드러난
거울 속의 낯선 남자,
홀라당 벗었어니 춥긴 하겠네,
푸석푸석한 마른 북어 꼴에
맹한 눈꼬리는 우째 저리 매가리 하나 없을꼬.
훌렁 벗었더니
오늘 춥구요.
아침 걸렀더니
오늘 배 고퍼구요.
엄니,
당신 며느리가 하도 까탈 시럽게 굴었던 안경탓에
오늘은 보이지도 않아 버둥거리기만 했구요.
제발 이런 말은,
그래도 하지 말자고 했는데요
두개도 아니고
항개 뿐인 마누라,
드세기도 해서
환갑 지나고 부턴 말뽄새가 아예 신경질이라요
엄니,
엄닌 그리도 인자 하셨는데요.
엄니,
감기 몇주 앓았더니
엄청 신경 곤두서고 서러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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