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화무십일 빙 (花無十日 冰)

단풍들것네 2018. 4. 21. 08:30

  모질다는 소리가 절로 나올 만큼 올겨울은 만만치가 않은데, 

그만 예보대로 사나흘 간 얼음 비가 내렸다. 


이제 맑은 햇살을 잠깐 내 보일 때도 되었건만, 

소금을 쏟아부어도 끊임없이 내리는 얼음 비가 도로를 이미 빙판으로 만들었으니, 

오늘도 매장은 한산하겠다. 


올겨울 처음으로 학교가 휴교를 하고, 

얼음 무게를 견디지 못한 전선이 내려앉아 사업장 뒤편의 아파트는 종일 단전이 되었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불편한데 자동차까지 시동이 걸리지 않는다며,

매장을 들어서는 여인의 얼굴이 편치 않아 보여 주말부터 풀린다는 말로 대꾸를 한다. 


그런데 어째서 이 여인은 들릴 때마다 볼멘소리를 늘어놓는가, 

풍성해 보이는 몸집처럼 그래도 조금 넉넉하면 좋으련만, 

홀로 애를 키우는 싱글맘의 고단함이 어깨 위로 묻어 나오는 듯 하여

덩달아 내 마음도 궂은 날씨처럼 을씨년스럽고 무겁다. 


이맘때면 웬만큼 물러갈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뒤늦게 찾아온 추위가

너, 나, 모두를 더욱 움츠러들게 하는 며칠이다. 



  톨스토이나 도스토옙스키와 같은 문호들은, 

러시아의 긴 겨울을,

사유하고 고뇌하여 그 내면의 세계를 위대한 문학작품으로 탄생시켰다고 하니, 

나 역시 이곳의 짧지 않은 겨울 이야기를 써보고픈 생각이지만, 

쉽게만 살아온 내력으로 염량있는 깊은 글을 쓴다는 건 단지 욕심일 뿐, 

볼멘소리를 달고 사는 저 젊은 여인처럼 웅얼거리기도 하고, 

궂은 날씨 탓을 하며 하릴없이 귀한 시간만 축내고 있다. 



  간밤에 내린 얼음비가, 

542번지 라인랜드 내 집 앞뜰에 겨울 끝 무렵의 귀한 선물을 두고 갔다. 


  얼음 결정으로 덮인 잎 떨군 가지, 

차갑도록 맑고 투명한 순백의 옷이 그만 눈에 부셔, 

탄성이 나올 것만 같다. 

시리도록 차가운 날씨에 통증 같은 아픔이 깃든 자태는 어쩌면 위엄있어 거스를 수 없는 아름다움이다. 


깊은 사유와 고뇌는 커녕, 

쉽고 편하게만 살아가는 나에게도 이 아름다운 겨울 이야기 하나를 주고 갈 셈인가 보다. 



  오싹하고 찌를 듯, 아픔 같은 이 귀한 겨울꽃의 아름다움이 전혀 위안이 되지 않는 

아내는 다가올 봄이 마냥 급하다. 


지난주엔 기다림에 지친 아내의 부탁으로, 

뒤뜰에 설치할 물건을 자르고 다듬는 중노동을 했더니, 

아직도 겨드랑이에 생긴 몽우리 탓에 양팔을 들어 올리기가 불편한데, 


화무 십일빙  (花無十日冰).

주말이면 저 빛나는 얼음꽃, 나의 겨울 이야기도 멀어져 갈 것이고,


이제 다가올 봄은,

얼마나,


분명,

찬란한 계절일까 ?


귀한 선물탓에 늦추위가 고맙게 느껴지는 하루다.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혼자만의 귀한 시간  (0) 2018.05.03
담금질 & 무두질  (0) 2018.04.28
세상의 이치  (0) 2018.04.14
비켜 앉은자리  (0) 2018.04.11
밥심으로 산다는데   (0) 2017.1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