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잠자리 탓에 잠이 깨다.
새벽 세 시 반이니 두서너 시간을 뒤척였나 보다.
어떻게 할까 ?
다시 잠들기에는 어중간한 시간인데.
며칠째 습기를 머금은 후덥지근한 날씨에 에어컨이 작동하지 않아 새벽녘까지 끈적거려 잠을 설치게 된다.
작년에도 수선했었고 얼마 전에는 스타트 관련 부품이 문제라고 적잖은 비용을 지불했는데,
또 며칠 전에 이상이 생긴 것이다.
잦은 고장에 화도 나고 수선비도 만만찮아 이래저래 미루었더니 이렇게 밤잠까지 설치게까지 되었다.
거의 십 오 년쯤 되었으니 오래되었기는 했다.
그렇다고 마냥 화를 낼 일만은 아니다. 세월의 무게라는 것이 어디 물건이라고 비켜 가질까.
바래고 낡아지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다행히 안방의 아내는 잠을 깨지는 않은 모양이다. 저녁 늦게까지 적지 않은 불평을 했었는데.
조용히 뒤 덱으로 나와 앉았다.
아내의 잠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 불을 켜지 않으니 어둑하긴 하지만 그렇게 불편할 정도는 아니다.
단지 창문 하나 사이로 이렇게 한결 서늘할 수 있다니 무더운 방에서 뒤척거렸던 일에 실소가 난다.
띵했던 머리와 찌부덩 했던 어깻죽지가 차라리 상쾌하기까지 하니 다시 잠자리에 드는 것은 그만 두어야겠다.
와인 한잔을 가득 채우고 등나무 의자를 댕겨 편안한 자세를 취하고선 두 다리를 덱 위에 걸쳤다.
늦은 밤 새벽녘까지 적막하고 정갈하기도 한 이 고요함과 마주했었던 때가 예전에는 가끔 있었다.
삶과 우정, 그리고 사랑, 열정...
지금 생각하면 손가락 오그라들 것같이 낯간지러운 그런 것에 고민하며 밤을 꼬박 흘려보냈던
이제는 기억도 희미한 오래전에는 있었었다.
상록수 세 그루가 이층지붕까지 다다라 있다.
한치 구부러짐 없이 쭉 벋은 자태가 시원하고 한편으론 사뭇 위엄스럽기까지 하다
언제 보살핌과 가꿈도 없이 저렇게 곧게 자랐을까.
풍성한 가지들의 넉넉함이, 이 새벽에는 짙게 물든 초록의 거뭇한 색깔로 우울하게도 보이지만,
한낮 뙤약볕에서는 분명 시원한 그늘을 아낌없이 내어 줄 것이다.
자랐다고 하는 것은 집을 처음 짓고 왔을 때 어른 키 정도 되는 세 그루를 손수 심었기 때문이다.
이 덱밑의 오밀조밀한 뒤뜰은 아내의 정원이다.
매년 봄 어김없이 정성을 쏟아붓는 정원엔 혹시라도 담배꽁초 하나 버릴 수 없다.
언제 저런 것을 이다지 세심하게 조성해 놓았을까?
정원 가장자리를 따라 태양광 캔들이 푸르스름한 빛으로 어두움을 밝히고 있다.
종일 달구어진 고단한 육신이지만, 보는 이 없는 구석에서 저렇게 빛나고 있다.
스스로 아낌없이 내어주다 어느덧듯 동틀 무렵에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갈 것이다
나의 삶이 저 어둠 속의 편백과 태양광 캔들처럼 누구에게 자그마한 그늘과 희미한 빛이라도 되었던 적이 있었을까.
많이도 굽이 돌아서 이 자리에 와있다는 생각이다.
곧고 반듯했기보다는 구부러지고 휘어지며 왜 그렇게 고집스럽게만 살았을까 ?
아니 아직도 그렇게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덱 뒤로 연결된 작은 냇가 쪽엔 이름 모를 들짐승의 울음이 밤새 그치질 않고,
어느새 와인잔은 비어 있다.
여보시게,
잔은 이제 그만 채우지,
일찍 사업장에 나가야 하지 않은가,
자네 아직은 젊어,
정신 차리시게.
아니 거기 누구신가 ?
이 새벽녘에. (Jul.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