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국회의장 박00 씨의 골프장 추문이 얼마 지나지 않아 흐지부지될 모양이다.
잠깐 기사화되고는 전례로 보아 곧 유야무야될 것이지만,
ㅂ 씨 개인의 문제가 아님을 공론화시킬 수 있게 된 여건과 현실이 그나마 다행스럽고,
젊은 여인의 용기가 그래서 돋보인다.
이 같은 끊이지 않는 추문이 어찌 성추행에만 국한된 것이고 그리고 ㅂ 씨 혼자만의 문제일까.
한 늙은이의 추태에서 볼 수 있듯 이러한 사회적 병리 현상들을 방지할 수 있게,
구조적인 문제점들을 들추어내는 더욱 정교한 제도와 시스팀의 정립이 필요하다는 사회적인 함의를
새삼 거론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
각처에서 거리낌 없이 행해지는 이런 부류의 횡포와 방자함이 너무 오랫동안 간과되고 방치되었다.
이글에서는 간략히 ㅂ 씨 추문의 원인이 된 性(Sex) 에 대해서 생각해 볼까 한다.
性 이란 무엇일까.
번식을 위한 암수의 교합이니 외형적으로 보이는 형태가 그렇게 썩 아름답게 보이지는 않지만,
그것이 종의 대를 잊기 위한 가치 있는 행위임에는 틀림없을 것이다.
그러나 유독 인간 界에서는,
性 이 종의 번식이라는 본래의 목적과는 사뭇 동떨어진 쾌락으로 변질된 것 같다.
이것이 조물주의 실수인지 아니면 인간만의 독특한 진화의 결과물인지는 모를 일이지만,
모르긴 해도 종의 번식을 위한 성스러운 숭고함을 실천한다고 생각하며 性 행위를 하는 인간은 없을 것이다.
예전의 씨받이라는 무작스러운 예외의 경우가 있기는 했지만.
감정적이고 비약적인 논리인 듯하지만, 인간의 삶이라는 것이 어떻게 보면,
이 찰나의 쾌락을 위하여 경주하는 것이라 보아도 그다지 틀린 말은 아닐 것 같다.
조금 특별한 경우이지만,
오직 房事만을 위하여 부대급 병력의 젊은 남성들을 가두어 키웠다는 淸末의 서태후라는 여인의 경우도 있고,
성경에도 다윗과 그 자식들의 性에 대한 언급 - 신하를 죽인 후 그의 부인을 갈취하고, 아들은 누이를 겁탈하고
아비의 첩까지 탐내었다고 꼼꼼할 정도로 쓰여 있으니 인간사가 性을 쟁취하고 획득하기 위한 것이라는 전제가
그다지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옛 이야기를 예로 제시하는 것보다는 지금 이 시대의 현상이 더욱 실감 날 수 있겠다.
구글에서 性과 Bible 이라는 두 단어를 각각 Key-in 해보자.
지금 바로 검색을 해보니 性 이 Bible 보다 열 배가 넘는 양으로 화면을 가득 채운다.
곳곳에 性과 관련되는 것들이 발 디딜 틈새도 없이 도배되어 있다.
‘호빠’, ‘포르노’, ‘야동’, ‘파고다 아줌마’, ‘콜라텍’, ‘스와핑’..
흥미로운 것은 ‘구성애’ 라는 희한한 이름의 성 전문가라는 여성도 보인다.
性을 아주 프로페셔널 하게 한다는 말은 아니겠지만, 아무튼 재미있는 세상이다.
그만큼 인간사에서 관심 있고 중요하며 흥미 있는 것 중 하나가 단연코 性 이라는 반증일 것이다.
‘죽어도 좋아’라는 칠십 대 부부의 實際 房事 장면만을 찍은 한국영화가 상영되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주름투성이의 늘어진 몸매에 남녀 성기와 앓는 소리까지를 카메라가 무자비하게 잡아내는 영화라고 한다.
칠십 대 부부가 보여주기를 원했던 (?),
젊디젊은 감독이 이야기하고 싶었던 (?)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일말의 스토리도 없이 實際 房事만 부각 되는 영화로 보여 연민과 씁쓰름했던 느낌을 지금도 기억한다.
이러한 지경이니 남녀노소 불문하고 최소한의 의식주만 해결된다면 性 이 화두가 되는 세상이다.
단언컨대,
평생을 베품과 진리를 탐구하는 길을 걸었던 구도자 - 예를 들면 테레사 수녀, 성철스님 같은 분을 제외하고선
性 에서 자유로운 이가 어디 있을까.
인도에서는 신적인 존재로 추앙받는다는 비폭력 주의자, 앙상한 뼈마디만 남아 보이는 간디도 발가벗은 뭇 처녀들
틈에서 항상 취침했다는 기사도 있지 않은가. (발가벗은 처녀들 틈에서 잠만 잤다니 이 양반 정말 神일 수도 있겠다)
인간 - 세속의 보통사람들의 정황이 이럴진대,
부와 권력을 거머쥐었다고 생각하는 ㅂ 씨 같은 부류에서는 생면부지 젊은 여인의 가슴과 엉덩이를 조금 주물럭거렸다고
무엇 그렇게 손가락질 받을 일이겠는가.
따라서 자본주의와 권위주의의 폐해를 간과치 않았던 아나키스트들의 주장은,
어쩌면 일찍이 깨우친 사상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실상은 개인이 정부의 권력과 통제, 부의 힘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는 일이다.
공평한 사회, 약자가 소외당하지 않는 사회, 부와 권력으로부터 개인의 자유와 자존이 침해받지 않는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사회를 지탱하기 위한 최소한의 틀인 법의 양형 기준을 무자비하게 높여야 할 일이다.
예를 들어,
길거리에 가래침과 꽁초 투척에 재산의 반을 몰수하고
ㅂ 씨 같은 경우에 재산 전부를 몰수한다면 (가차 없이, 재심도 필요 없는) 조금은 맑은 사회가 될 수 있을까 ?
검버섯 핀 주름진 얼굴밖에 없는 한 늙은이의 추태를 보며 애들 같은 생각을 해보았다. (Jan.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