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s.ㅂ께서 다음 달의 딸아이 혼사를 미리 기별하는 전화를 주셨다.
잊지 말고 꼭 참석해달라는 음성이 가녀리게 흔들리는 듯하여 청첩장은 추후 보내겠다는 인사말을 놓칠 뻔 하다.
" 아이구, 축하합니다. 꼭 참석하겠습니다. 참석하고 말구요. "
나도 모르게 허둥거려지며 괜히 목소리가 커지는 걸 느끼다.
전화 말미에 언뜻 묻어 나왔던 애잔함 탓이었을까.
" 애 아빠가 오늘 아침 심장마비로 쓰러졌어요. "
" 아니 뭐라구요 ? "
부인은 의외로 차분하게 ㅂ의 부음을 전했다.
며칠 전에 통화를 했었는데 도대체 이게 무슨 영문이란 말인가.
이른 아침,
집안에 들어온 다람쥐를 쫓아내느라 실랑이를 하고 욕실에 들어간 후 한동안 기척이 없어 문울 열어보니,
바닥에 엎드려 있어 별스러운 장난을 다 한다고 생각했었다니.
그렇게 ㅂ가 허망하게 이 세상을 떠난 지가 벌써 5 ~6년 전 쯤이다.
ㅂ는 같은 부서에서 19년을 함께 일했던 입사 동기이다.
그리고 나보다는 정확히 두 해 먼저 토론토로 이민을 왔었다.
번번이 진급에서 누락 되었던 그는 회사생활을 무척 힘들어했다.
유별난 성격이라기보다는 그의 특이한 업무 스타일과 처신이 원인이었을 것이다.
어쩌면 그가 자초했다는 말이 정확할 수도 있겠다.
면전에서 부당한 지시와 요구라며 따지고 드는 업무 스타일을 어떤 상사가 기꺼이 용납할 수 있었을까?
취중에서의 조금 껄끄러웠던 대화조차도 여지없이 찍히던 당시 대다수의 회사 분위기에서.
토론토에서 만난 ㅂ는 조금 변해 있었다.
외양도 그랬거니와 신경질이 묻어 나왔던 어투도 조금은 부드러워진 듯해서 이 친구 정말 이민 잘 왔다고 생각했었다,
도착 즉시 취직을 했던 아이비엠의 생활은 반년 만에 끝이 나고,
연이은 연방교통부 전산실의 생활도 새파랗게 어린 중국인 매니저와 다툰 후 몇 개월 만에 접었다고 했다.
그의 유별난 처신이 이곳이라고 바뀌었을까.
이제야 이곳에 와서 겨우 철이 좀 들 모양이라고 덧불이는 부인의 말에,
씁쓰름해 하던 그의 모습이 왜 메말라 보인다고 느꼈을까.
언젠가는 아이들이 공부할 생각이 없는 모양이라며 싹수가 노랗다고 육두문자를 섞어가며 언성을 높이기도 했었다.
딸아이는 운전면허를 따자마자 바깥으로 떠돌아 도대체 자동차 구경을 할 수가 없고,
아들 녀석은 하이스쿨 졸업도 하기 전에 Habitat 일에 빠져 고등학교 졸업하면 아프리카로 갈 것이라는 대꾸에,
머리통을 쥐어박으며,
" 이눔아, 봉사도 뭐가 있는 놈이 하는 것이지, 고등학교 겨우 마쳐서는 네 앞가림도 못해 "
한바탕 푸닥거리를 했다며 푸념을 했었었다.
그가 사고를 당하기 얼마 전,
고등학교 졸업 후 한동안 밖으로 떠돌던 딸아이가 대학을 마치고 캐나다 공군의 헬기 조종을 한다고 했다.
" 걔가 나보다 수입이 더 많아, 고공점프도 한다네 ! "
활짝 웃으며 대견해 하던 모습이 사진처럼 또렷하다.
그 아이가 이제 결혼을 한다는 이야기다.
그래, 이곳에서 교육받고 자란 너희들이 아무렴 부모 세대만 못하겠느냐.
굵고 튼실한 뿌리를 내려 너희 꿈을 이루어라.
당연히 결혼식에는 참석 하마. (Feb.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