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은퇴 후 제주에 살며

단풍들것네 2018. 7. 24. 22:43

은퇴 후 제주에 살며라는 어떤이의 글을 읽다가,

문득 옛일이 어제일같이 떠오른다.

 

“ 아버님,어머님 안녕하십니까?

목포에서 출발한 여객선의 멀미는 견딜만 했습니다.

여러사람들이 토하고 괴로워했지만, 아버님 말씀대로 저녁을 든든히 먹고 멀미약을 챙겨먹은것이

도움이 되었던것 같습니다.


무사히 도착하여 오후에 성산 일출봉에 다녀왔습니다.

내일은 영실쪽에서 한라산을 등반하기로 했습니다.

단지 좁은 바다를 건넜을 뿐인데,

이국적인 풍광과 분위기가 마음을 들뜨게 합니다.

반쯤만 이해할수 있는 이곳의 언어와, 우리를 뭍것들이라고 하는 이곳 사람들의 배타적인 태도가 당혹스럽기도

합니다.


처음 접하는 검은 화산석의 담장과 조그마하고 단단하게 묷은 갈대지붕,

검은빛이 도는 빨간색꽃의 키높이만한 이름모를 가로수가 이색적이긴 하지만 그렇게 다정스럽게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말로만 듣던 바람도 매우 심하고,

검정돌담으로 둘러싸인 야외변소(그당시에는 화장실을 변소라고 했다)에선 돼지도 키우고 있습니다.


민박집 아저씨가 잡아온, 갈색빛의 손바닥보다 조금적은 자리라는 생선찌개는 가시가 많긴 했지만 독특한 향의

쑥같이 생긴 야채와 어울려서 맛있는 저녁을 먹을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오늘오후 성산 일출봉을 오르면서 바라본 쪽빛바다는 어떤말로 표현할지 모르게 아름다웠습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바다를 저만보는것이 죄송스럽기도 합니다.


내일 한라산 등반후에 다시 소식올리겠습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요

그럼 아버님,어머님 안녕히 계십시요.


1973년 8월 00일 소자올림. “



 

대학 1학년 여름방학,  과친구들과 제주도 여행때 부모님께 대충 이런내용으로 엽서를 보냈다.

어머니께서는 어디 그런 흉악한될 가느냐고 반대하셨지만, 아버지께서는 이해하셨다.

나의 어머니에게, 73년 여름의 제주도는 그렇게 달갑지 않은, 고단한곳이었다.

 

카페에서 역이민지로 매일이다시피 언급이 되지만  정말 까맣게 잊고만 있었던 제주도에서의 기억이,

어떤이의 대학생때 여행담으로 내무딘 기억의 창을 두드린 모양이다.

아련한 젊은날의 기억이다.

 

그이후로도 제주도는 3번을 더 찾았었다.

8비트짜리 애플로 지원했던 제동목장의 코메디같은 업무, 신혼여행때의 한라병원 입원사건,

둘째아이가 생기지 않아 마음고생이 심했던 아내를 위한  여행.

그러한 남다르고 조금은 색다른 기억의 제주가 왜 여태까지 전혀 떠오를지 않았을까?

 

만남과 인연의 소중함을 깨우치기에는 내공이 아직은 부족한 탓일까?


(Dec. 2012)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이들에게 짐은 되지 말아야 할 텐데.   (0) 2018.07.24
Pardon me - 뭐라고 그러셨나요 ?  (0) 2018.07.24
눈,비, 그리고 연지찍은 사내   (0) 2018.07.24
엎친데 덮친격  (0) 2018.07.24
Black Berry 유감   (0) 2018.07.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