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노역 (勞役)

단풍들것네 2018. 7. 24. 10:11

주일 아침,

늦은 식사를 하고 설거지를 합니다.

일주일에 한 번 있는 일이지만 이 설거지만큼은 정말 내키지 않습니다.

유리 그릇을 일부러 떨어뜨려 볼까 잠깐 궁리를 하지만 어리석은 짓입니다.


청소기를 돌리고 이부자리 일광소독도 해야 합니다.

창문의 방충망도 죄다 걷어내어 물 호스를 틀어서 씻어내라고 합니다.

빨래방, 화장실... 많기도 해서 아래층은 다음 주에 할까 했더니 어림도 없다고 합니다.

허리에 뻑뻑함을 느낄 만큼 조금 벅차지만, 마침내 마무리를 했습니다.


자동차 세차 핑계를 대고 서둘러 나서려는데 그만 또 끌어 앉힙니다.

주말에 비가 온다니 세차는 그만두라고 합니다. 


차고 문을 활짝 열더니 와서 보라고 합니다.

차고 한쪽 편을 가득 채운 골판지로 튼튼히 포장된 엄청 큼직한 놈이 보입니다.

두 손으로 밀어보아도 웬걸 꿈쩍을 하지 않습니다.


문득 오늘이 아버지 날인 걸 생각합니다.

요즈음 자주 자잘하게 몸 이곳저곳이 탈이나고 심란해 했습니다.

그걸 놓치지 않고 이렇게 커다랗고 무거운 선물을 준비한 것 같아 순간 고마운 마음이 듭니다.


작업용 칼을 들고 실하게 포장이 된 골판지를 조심스레 하나씩 벗겨내니

공기주머니가 볼록볼록한 비닐 포장에 싸인 무거운 철재들이 보입니다.


도대체 무엇인고 ?

책상은 아닌 것 같은데?

정원용 철제 브릿지 부속품들이 차곡차곡 싸여있습니다.


주말에는 비가 온다는 예보이고 주 중에는 짬을 낼 수 없으니 오늘밖에 시간이 없다며 

정원용 철제 브릿지를 조립하라고 합니다.


아이고,

한숨이 나옵니다.


오늘은 아주 무더운 날입니다. 

주말에 비가 올 예보이고 다음 주는 20도로 떨어질 것이라곤 하지만,

지금은 31도의 뜨거운 날씨입니다.


메이드인 차이나는 겉보기엔 그럴듯 해보이기는 한데 

왜 세세한 부분이 완벽하게 딱딱 들어맞지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땡볕에 땀을 쏟으며 저녁 무렵까지 혼쭐이 났습니다.


일전에 뒤띁에 깔린 정원석에 걸려 넘어져 팔꿈치와 정강이를 몹시 다친 적이 있었습니다.

그일 탓인지,

오늘 땡볕의 노역이 아버지날의 선물이었나 봅니다.


그런데 선물은 받는 사람이 기뻐해야 하는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드는지 모르겠습니다.  


(Jun.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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