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연민 (이레 밤 - 일 년)

단풍들것네 2018. 7. 24. 10:02

 

뭘 그렇게 섭섭할까.


'엄마, 

아빠는 이런 것 좋아하지 않고 어울리지도 않아, 아빤 이제 그냥 늙은이야, 대충 시장에서 한 켤레 사세요'


모처럼 시간을 낸 딸아이와 마주 앉아서 온라인으로 몇 가지 주문을 하다 괜찮은 방한화를 발견했었는데,

아이가 불쑥 하는 말에 그냥 맥이 풀리고 괘씸했었다며 며칠을 곱씹었다.


뭘 그게 대수로운 일이라고, 

아이 말대로 시장에서 그냥 장만하는 것이 간편하긴 할 텐데. 


몇 해 전, 아이가 가죽장갑을 하나 사주었는데 그게 아주 불편했다.

조심조심 사용하긴 했지만 얼마 못가 상처가 나고 쉬이 망가졌었다.

고급스러운 제품이 약한 법이긴 하지만 기사 딸린 회장님이나 쓸 물건이었으니 내 잘못보다는 아이의 잘못인 셈이다.

나 같은 사람에게는 괜한 낭비라고 했던 말을 녀석이 오랫동안 기억했었는가 ?


아내의 섭섭함은 때 이른 늙은이 취급을 당한 나에 대한 연민인지,

같이 나이 들어가는 자신을 돌이켜 보게 된 것인지는 모르겠다. 





'어이 친구, 나 죽다가 살아났네'


철공소 주인인 Don 이다.

동년배로 아이들도 같은 또래, 부인도 교사였기에 이것저것 비슷하다며 오랜 고객으로 꽤 친밀한 척하는 그가

5 주전에 가슴을 열고 심장 수술을 했었다며 병 자랑을 했다.

이제 슬슬 걸을 만 한데, 몇 개월을 쉬어야 하니 신문 보는 일이 소일거리가 될 것 같다며 신문을 한 뭉치 집었다.

 

스페인에서 메탈 아트 공부를 했다는 그는 떠벌리기를 좋아한다.

시티에서 가장 번화가인 광장에 설치된 커다란 메탈 벨 - 내가 보기엔 넓지막 한 철판 몇 조각을 그냥 구부려서 얼기설기 용접해놓은 것 같은데,

을 자기 작품이라 자랑하는 소탈한 사람이다.


'어이 친구, 건강 조심하게, 우리 이젠 젊지 않아, 시그널도 없이 갑자기 찾아 온다네'


저 휑한 뒷모습은 15 파운드가 빠져서인가,

그가 나선 출입문 사이로 스며드는 찬바람이 거세다. 

메탈 엔지니어링 컴퍼니 CEO 자리를 그만 두어야 하는 아쉬움일까,

나이 들어가며 병이 든 자신에 대한 연민인가?

되려 내가 해야 할 말을 대신하며 돌아서는 야윈 그의 뒷모습이 매우 작았다.





딸아이와 Don이 깨우쳐 주긴 했지만, 난 여전히 꿋꿋하다.

 

'하이, 마이 프렌드'

'하이, Brother'

'하이, Guy'

'하이, 영맨'


몇 번 들렀다고 아는 체, 건들거리는 젊은 녀석들을 대하면 그만 분기탱천한다.

 

'야 이눔아, 

우째서 내가 네놈 친구고 브라드냐, 

나는 오너고 너는 단지 커스터머야. 후레자식들 같으니'


정색을 하는 의외의 반응에 이놈들도 의아해하며 뻘쭘들 한다.

여러 해가 지났건만 이 시건방진 태도를 아직도 삭이질 못하니.. 


갈수록 편협하고 옹졸해져, 너그럽기 보다는 아직도 시시비비를 가려야만 하고, 부당함을 삭여내지 못하고,

내가 이젠 모든 것, 모두에게서의 중심이 아니라는 것을 애써 외면한 채,

아직은 세상의 가운데에 있고픈 미련스러움인지 모르겠다. 





눈이 많이 왔다.


많이 왔다기보다는 매일 푸지게도 내린다.

아내는 정원수와 화초들에 좋지 않다며 드라이브 웨이에 소금 뿌리는 것을 마다하니, 조금이라도 게으름을 피웠다간 삽시간에 빙판길로 변한다.  


오늘따라 눈 치우는 기계가 작동 하지 않아 애를 썼다.

그만 망치로 확 부숴버리고 싶을 만큼 솟구치는 화를 참고 삭히느라 더더욱 애를 썼다.

요 빌어먹을 기계가.. 

어제까진 멀쩡하더니..

메뉴얼대로 체크하고 또 하고..또 했는데도 요지부동이다.


아내가 내다보고 초크 스위치를 잠가 보라고 했겠다.

성질부리는 모습이 보기 싫어 아이에게 전활 했더니 인터넷의 프로블럼 슈팅 같은 사용자 포럼에서 이런 경우를 발견하고 알려준 모양이다.

웬걸 그냥 우르릉 시동이 걸렸다.


'허리와 무릎이 가끔은 시큰거리지만, 나 아직은 짱짱하다' 


누구에게 내퍁는 말인지도 모른 채,

메뉴얼 따라, 절차를 밟아야 한다는 무의식적인 고집이 무시당했다는 당혹감이었을까,

한참을 눈밭 사이에서 서성였다.




 

편리하고 이맛저맛 취향 따라 한잔 분량으로 쉽게 내려 마실 수 있다며,

아이가 장만해준 커피 머신에서 우려낸 커피 맛이 그런대로 마실 만 하지만,

옛날식으로 필터에 물 붓고 끓여내어 은은했던 깊은 맛은 덜한 것 같다.

내 입맛에 맞질 않는다고 온전히 이야기했다가는 또 핀잔을 듣지 않을까..


변하는 것이 성에 차지 않는다고 해도 변해서 좋은 면도 가끔은 있는 법인가 보다.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조선왕조실록을 DB화 했다.

한 사람의 학자로서는 평생을 연구해도 불가능하다는 이 방대한 선조들의 발자취가 기록된 업적을 해외에서 나의 노트북으로 검색할 수 있으니, 


많이 내린 눈으로 애를 썼기에 옛사람들의 눈에 관한 이야기를 검색해보니 


 ( 세종 3년 12월 29일, 

   제주도(濟州島)에서 기르는 말이 많기가 1만여 필이나 되었다. 이 섬에서는 기후가 온난하여 겨울에 쌓인 눈이 없었는데, 

   이 해에는 추위가 심하여 눈이 5, 6척이나 쌓였으니, 말이 많이 얼어 죽었다 )는 기록이 보인다. 


하! 이 얼마나 대단한 변화인가.


시간이 멈추질 않고 주위에 가까이 있을 것이라 여겼던 낯익은 것들이 차츰 변해간다. 

세상의 법칙일 것이다.

인터넷에 널려있는 가벼운 지식들이,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상에서 일에 대한 애착과 남다른 열정으로 평생을 한 우물을 파고 정진하며 탐구했던 고지식한 자세가 우스워지는 세상이다. 

그래도 받아들이고 인정하도록 하자.

주방장이 희망이라는 세대들의 변화도 인정하자.




한 해가 가고 있다. 세상은 또 그만큼 변할 것이다.

이글의 제목처럼 이레 밤만 지나면 연금 수령할 수 있는 나이가 일 년만 남게 된다. (연민 / 이레 밤 - 일 년)


연금이라는 것이 이젠 그만접고 쉬라는 뜻일 테니 지금이라도 준비를 해야 할 것 같다.


평생 사람들을 미워만 했던 옹졸함을 벗어나,

어쩌면 조금이라도 덜 미워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일에도 넉넉한 시간을 낼 수 있을 것이요.

평생 아쉬웠고 주눅 덜게 했던 인문학이란 것에도 한 발짝 들여 밀수 있을 것이요.

나고 죽는 것에 초연하다는 종교라는 믿음에도 반걸음은 얼굴 들여대고 싶은 마음이다.



그러니 나의 아내여, 

연민의 눈초리로 아직은 날 보지 마시요.  


또 아쉬운 해가 가고 있습니다.


Happy Holidays !               (Dec.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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