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의 결산을 마감하느라 분주하였던 몇 주간의 작업에서 벗어나다.
힘이 부치긴 했지만 옥죄였던 부담 뒤의 상쾌함이 한결 새롭고,
오랜만의 숙면과 모처럼의 게으름에 느긋한 휴일 아침이 평온하다.
' 톡톡, 탁탁 '
' 탁탁, 까악 '
간헐적인 소리에 눈이 뜨여 재킷을 걸치고 밖으로 나섰다.
이층지붕을 가득 덮고 있는 기러기떼들.
순간 망설인다.
팔을 휘저으며 고함을 질러 볼까, 돌멩이를 집어서 던져볼까,
사다리를 타고 지붕까지 접근하여 기다란 막대기로 아예 위협을 가해볼까.
한 녀석을 시범적으로 후려치면 녀석들 혼쭐이 나겠지.
짧은 순간이지만 생각일 뿐,
이웃에서 쫓겨나기 전에 경찰에 신고부터 할 것이다.
가금류와 야생조류를 썩 좋아하지 않기도 하지만 지붕 걱정 탓이다.
늦잠을 방해받은 괘씸함은 그렇다 치더라도 노골적으로 저렇게 지붕의 싱글을 쪼아대고 있으니.
지난번 지붕을 교체하기 위한 견적이 팔백여만 원이라고 했기에,
엄두를 내지 못했던 망설임이 저놈들의 억센 다리와 부리를 못마땅히 여기게 했나 보다.
이번 겨울은 그다지 모질지는 않았어도 때늦은 얼음비와 변덕스러움에 견뎌내기가 수월찮았다.
그렇지만 저 기러기떼가 모여 들었으니 이곳의 긴 겨울도 이젠 끝자락인 모양이다.
( Google 에서 따옴 )
캐나다 구스 ( Canada goose ) 는 검은 머리와 목, 흰색의 패치를 두른 얼굴과 갈색의 큰 몸통을
가진 야생의 기러기로 봄철이면 북미 (주로 캐나다 지역) 에서 새끼를 번식하고 겨울이면 따뜻한
남쪽으로 이주하는 철새이다.
연한 풀을 먹는 초식성과 맑은 물가에서 서식하는 습성으로 광활한 목초지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의 많은 호수를 가진 캐나다는 이들이 서식하기에 더없이 좋은 환경을 제공하는 곳이다.
초지로 이루어진 골프코스, 넓은 공원, 사람들의 거주지역 (정원)에서 주로 거주하기에,
배설물로 인한 해충과 박테리아, 노이즈 - 꽥꽥거리는 울음, 새끼를 보호하기 위한 공격적이고
위협적인 행위는 종종 신문의 기사로 다루어지기도 한다.
이들은 큰 몸집만큼이나 꽤 용감하다.
출입, 출구가 하나로 겹쳐지는 (이런 곳을 보통 Place 라고 하는) 내 집 앞의 도로를 가로 지르며
느릿느릿 한껏 여유를 부려 아침 출근 시간에 애를 태우게 하기도 한다.
몸집이 크다고는 하지만 사나운 발톱과 이빨을 가진 맹수도 아닌 처지에 사람과 자동차를 두려워
하지 않는 듯한 태도에는 어이가 없어 그냥 자동차를 밀어 붙여 보고도 싶지만,
모른 체 하는 것 같아도 이곳 사람들 신고하는 것은 얄밉도록 철저하니 그럴 순 없다.
그렇다고 저들이 마냥 위험을 무릅쓴 저런 행위를 짐짓 하지는 않은 것 같다.
뒤뚱거리며 여유를 보이고 의젓하게 보이기 위한 느릿함 뒤로는 까만 두 눈의 끊임없는 주위의 관
찰과, 별 위해가 없을 것이라는 판단 후의 행동이 틀림없을 것이다.
사냥감의 목을 물고서는 상대방의 숨이 넘어갈 때까지,
단지 한끼의 먹이를 위해 땅바닥에 누워 질질 끌려 가며 허트러진 모습을 보여주는 맹수의 제왕이라는 사자
보다는,
차라리 조금의 위험을 무릅쓰더라도 화들짝거리는 가벼움을 택하지 않으려는 자태.
어쩌면 당당한 기품이라 할수 있을 것이다.
눈에 덮였던 앞 뒤뜰엔 어느새 새싹들이 조금씩 고개를 내밀고 있다.
바쁜일상에서 미쳐 깨닫지 못했던 자연의 섭리를 괙괙 거리던 기러기 떼가 일깨워주는 아침이다.
내친김에 뒤뜰 천변의 말채나무 사진을 한 컷 잡아 보았지만
그새 눈을 뿌리는 날씨와 찬바람이 매서워 좋은 그림이 나오질 못했다.
(뒤뜰 천변의 말채나무)
일전에 말채나무를 글 올리신 분이 편찮다고 해서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사진을 올려 보았다.
(Apr.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