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커피점에서 커피 한잔을 사다.
비록 일회용 종이컵에 담겼지만 구수한 향과 손바닥으로 전해지는 따스함이 좋다.
종이 컵에 64라는 숫자가 쓰였길래 오늘은 특별히 64원이냐는 실없는 농담에도
살짝 웃는 아가씨의 미소에 잠시 행복하다.
나는 커피를 많이 마신다.
커피 많이 마시는 것이 내 세울만한 일은 아닌데,
맛과 향을 즐긴다기 보다는 그냥 오랜 습관이 된 것 같다.
그러니 나의 매장에는 항상 커피가 끓는다.
하루에도 수없이 마시는 커피값도 절약할 수 있고 덤으로 매장에는 그윽한 커피 향이 넘치니
고객들에게는 돈 들이지 않고 서비스를 하는 셈이다.
얼마 전 일회용 슬립을 남용한다는 뉴스를 보았다.
따뜻한 음료수뿐 아니라 찬 음료수 컵에도 슬립을 끼워 주어 자원 낭비가 심한데,
외국에서는 요청하는 경우에 뜨거운 음료 컵에만 슬립을 제공한다는 이야기다.
맞는 말인 것 같기는 하다.
오늘 커피 한잔 살 때 뜨거운 종이컵만 주길래 굳이 슬립을 달라고 해 보았다.
그런데,
나는 뉴스를 볼 때 가끔 그슬리는 점이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환절기나 명절 때 헬기에서 풍경을 비춰주며 어김없이 신파조의 해설을 하는 것이다.
- 가는 봄이 아쉬워 유채꽃밭에서 추억을 담는 ..
- 황금빛으로 물든 들녘에 농부는 땀에 젖었던 노고를 ..
- 잠시 머물렀다 떠나는 자식들의 뒷모습에 남겨진 노부부는 ..
사실과 객관적인 공정함이 뉴스의 본질임을 모를리 없을 텐데,
전하는 이의 주관적인 감정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껄끄러운 것이다.
바뀌어야 할 부분이라는 생각이다.
두 번째는 커피 컵의 슬립처럼 우리의 단점이나 좋지 않은 점을 지적할 때
어김없이 외국의 예를 들어 우리의 잘잘못을 부각하는 점이다.
- 커피 컵의 슬립이 남용된다면 구태여 외국의 경우를 들추지 않더라도 고쳐야 하고,
- 고장 난 신호등으로 차들이 마구 얽히는 일이 잦다면 구태여 외국의 경우를 들추지 않더라도
네거리에 진입한 순서대로 출발하게 끔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고,
- 정체된 도로에서 구급차를 위하여 자리를 비켜준 것이 미담이 되는 세상은 아니 되어야 하고,
- 나들목에서 진입하는 차를 위하여 차선을 비켜 주지 않는 경우에는
당연히 엄격한 처벌을 해야 할 것이다.
이젠 조금 바뀌었으면 한다.
우리의 경제력이나 삶의 질도 많이 향상 되었다.
언제까지 구태여 외국의 경우를 들어가며 우리의 잘잘못을 따질 때는 이젠 지났다는 생각이다.
며칠 사이에 풍경이 바뀌었다.
얼마 전만 해도 황량한 들판이었는데 그사이에 푸른 들판으로 변했다.
바로 밑의 글에 올린 갈색의 쓸쓸한 사진이 정확하게 일주일 전의 모습이었는데 그새 이렇게 변하다니,
참 놀랍다.
쉼 없이 변하는, 변하지 않는 것이 어디에 있을까.
우리의 뉴스도, 남과 꼭 비교 해야만 한다는 우리의 생각도 언젠가는 변해갈 것이니
쓸데없는 생각은 오지랖만 넓힐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