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 사소하지만 조금은 색다른 경험과 느낌을 받는 경우가 가끔있다.
예를 들면,
양지바른 인적 드문 공원 한편에서 돋보기를 추어올리며 독서에 열중한 노인을 마주할 경우라든지,
잔디밭을 뛰어다니는 천진한 아이들의 그 해맑은 웃음소리에 잰걸음을 멈출 때도 있고,
외진 골목길에서 트랙픽 많은 반대편의 차선으로 가로 질러야 할 난감할 경우에 고맙게도 기다려주는 운전자를 만나거나,
또는 무심결에 뒤돌아보게 되는 정갈한 대화를 엿듣게 될 때가 이런 경우이다.
이런 자그마하지만 새삼스러운 경험을 최근에 하게 되었다.
보통 프랑스어는 듣는 이의 귀를 즐겁게 하는 언어라고 한다.
그러나 불어를 읽고, 쓰고, 말하는 것은 물론 알아듣지도 못하는 나의 생각이지만,
불어는 뭔가 조금 부족한 듯하다.
비음 섞인 어눌한 두리뭉실함이 맺고 끊는데 어설픈듯도 하여 조금 어리숙하고 어쩌면 멍청하게 보이기도 한다.
영어 또한 나에게 그렇게 매력적인 언어는 아니다.
이곳에 살면서 언어로 인한 불편함과 불이익이 적지 않은 탓이기도 하겠지만,
차라리 나에게 영어는 무지한 언어다.
소리와 표기가 일치하지 않는 비과학적이고 무식한, 영어식 표현으로 테르블한 언어다.
특히 젊은 친구들의 Fxxx 또는 Sxxx 로 시작되는 거칠고 억센 영어는 정나미가 떨어진다.
그런데 불어 못지않게 아름답고 매력적인 영어를 최근에 접하게 되었다.
정나미 떨어지는 영어도 말하는 사람에 따라서는 듣는 이의 귀를 즐겁게 해줄 수도 있다.
한가한 오후,
두 중년 여인이 들어오더니 곧장 카드 코너에서 카드를 고르기 시작한다.
수수하지만 깔끔한 자태가 단정하고 얼핏 이지적인 느낌이다.
그런데 한참 지나서도 여전히 뒤적이고 있다.
이럴 땐 슬며시 짜증이 난다.
대충대충 고르지 무슨 대단한 카드를 찾는다고 저렇게 꾸물거릴까 ?
웬만큼만 주물럭거려야지 그 손때 묻어 모두 버려놓겠네.
저러다 날 새지,
한마디 해야겠다.
가까이 다가서는데 도란도란 두 여인의 작은 목소리가 조금은 색다른 느낌이다.
무심결에 멈추어 선 귓가로 여유롭고 부드러운 대화가 클래식 음악만큼이나 매혹적이고 부드럽다.
의외의 일에 한동안 서서 바라본다.
아니!
어떻게 영어가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는가 ?
여인들의 목소리도 부드럽지만, 깔끔하고 절제된 포멀한 어투 때문이다.
Sympathy 카드 두어 장을 고른 두 여인이 문을 나선 후에도 멍하니 한참을 바라보았다.
身言書判 이라고 했다.
말하는 것, 말씨로 사람을 판단한다는 옛말이 틀리지 않는다.
Northfield 발음 (한국인에게 까다롭다는 r, th, f, l 이 겹쳐있어 내가 말하는 것을 단번에 척 알아듣는 경우가 많지 않다) 으로
우스운 꼴을 당하는 주제에 정갈하고 절제된 포멀한 영어를 어차피 구사할 순 없는 일.
이제부터 한국말이라도 노력해서 듣는 이에게 거칠고 억센, 정나미 떨어지는 인상을 심어주지 말아야 할까 보다.
저만큼 멀어져 가는 두 여인의 뒷모습이 참 곱다. (Feb.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