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들것네 2017. 10. 24. 00:01

 이른 아침 출근길의 하늘에 풍선이 하나 걸렸다.

열기구라고도 하는 가스를 데워 하늘에 오르는 대형풍선인 것 같은데,

날이 채 밝기도 전에 저 높은 곳으로 올라야 하는 사정이라도 있는 셈인가.

부지런하고 건강한 사람들이다. 


 새벽부터 하늘을 향하는 저 사람들의 생각은 어떤 것일까 ?

땅 위는 이른 시간부터 바쁜 세상이지만,

저 높은 곳에서는 고물고물하게 움직이며 조그마하고 하찮게 보일 것이 분명한 아래의 세상.


 훌쩍 망설임 없이 세상일을 놓아버린 듯 높은 곳으로 올라간 사람들을 한동안 멈추고선 올려보며

근 몇 달을 신경 쓰며 불편했던 시간이 저 높은 곳에서 내려다 본다면, 

새삼스러울 수도 있으리라는 생각을 잠깐 한다. 




 집 수리 건으로 힘이 들었다.

말은 쉽게 하고 그럴듯해 보여도 거칠고 대충대충 하는 품새과 영락없는 일당 치기 인부들이다. 

과정마다 말과 행동이 달라 매번 입씨름하는 것도 지쳐 끝날 즈음엔 흠뻑 두들겨 맞은 양 삭신이 쑤셨다.

차라리 벋대고 눈에 보이게 바가지를 씌우는 우리가 순진하다는 생각도 들었고.


 책임자는 보증기간이 오십 년이니 은퇴 후는 물론 평생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며 

금색 딱지가 붙은 50년의 보증서를 건네었으니,

따져보면 아무리 넉넉히 잡아도 앞으로 오십 년까진 살지 못할 테니 걱정할 필요는 없겠다. 


 오십 년은 긴 시간이다.

이미 은퇴하고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먼 시간이 아닌가.

그러니 인부 말처럼 염려는 접어두고 은퇴 후의 시간을 생각하는 편이 나을지 모르니,

말만 그럴듯해 보였던 그 인부가 어쩌면 현명한 사람이다.


 그러고 보니 나도 은퇴가 멀지 않았다.

마음이야 앞으로 한 이십 년쯤은 더 할 수 있다는 생각이지만,

단지 먹고 살기 위해 평생 일만 하는 것도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을 요즈음은 가끔 한다.


 은퇴후의 삶은 귀족이 되는 것이라고 어떤 이는 얘기했다.

귀족이라면 영국을 떠올리게 된다.

생업을 위해 몸 바쳐 일하지 않는 것이 영국의 귀족이라 한다.

사익을 위해 남을 해코지 할 필요 없이 여유로움을 바탕으로 인식의 지평을 확대해 

국가에 보탬이 되게 함이 귀족체제를 유지하는 이유라고 한다.


 그러니 은퇴하여 정말 귀족이 된다면 일만 하며 부대꼈던 삶 보다는 얼마나 여유롭고 아름다울까. 

그리고 안목을 높여 국가에 조금이라도 기여 할 수 있다니 이 또한 얼마나 멋진 일일까.



 은퇴, 

세상의 구속을 훌쩍 털어버릴 수 있음은 지혜로운 일일테다.

무디게만 살았기에 충족할 수 없었던 아쉬움과,

단선적인 사고로 나의 모순과 불합리를 바로잡지 않았던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면

부지불식간에 심성도 변하고 의식도 변할 것이니,

홀가분해진 여유로움으로 조금 현명해질 수는 있을 것 같다.


 인간에 대한 피상적인 이해 - 남을 미워하기만 했던 몰염치도 되돌아 보고,

자신과 주변을 깊이 이해할 수 있다면 소통을 위한 열린 마음으로 사회가 요구하는 덕목에 대한 가치관도 

나의 아이들과 가까운 이들에게 떳떳이 내보일수 있지 않을까.

물론 그 방편이 지금 나와는 거리가 먼 독서와 사색을 게을리하지 않는 것일 테지만.


 쓰고 보니 나 역시 말만 번지르르하다 여겼던 인부와 닮은 꼴이 되고 말았다.

말처럼 하기 쉬운 일이 어디에 있을까.


 은퇴 후의 삶을 아직 논하기 보다는,

딸아이에게 짐은 되지 않을, 나이 들어서도 건강하고 맑은 정신이면 족할 것 같다.


 불편하고 신경 쓰이게 했던 집 수리로 아직 이라 여겼던 나의 은퇴를 새삼 생각하게 되었는데,

그러고 보니 두어 달 후면 노령연금을 위한 서류 준비 하라는 메일이 올 때가 되었다. 


 허허 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