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툭 하면 나는 눈물

단풍들것네 2017. 7. 22. 00:28

  1년 반쯤 운영됐던 그릭 식품점이 파산을 한자리에 굿윌 도네이션 센터가 얼마 전에 오픈했다. 

2,500  스케어 넓이의 유닛으로 이 프라자의 사거리 코너이니 명당자리이다. 

내가 거의 십여 년을 머물렀던 곳으로 치솟는 임대료에 (눈물)을 머금고  4년 전쯤 프라자의 중간 쪽으로 규모를 반으로 줄여서 

옮겼으니 그 자리에 관심이 없을 수가 없다. 

 영업시각 전후에도 출입문 전에 도네이션 물건들을 그냥 던져놓고 가버리는 이들이 들락거리며 꽤 붐빈다. 

오늘도 굿윌이 문을 열기도 전 출입문 앞에 쌓여있는 베이비용 카시트,  여행용 가방,  텐트, 의자 등을 집어가는 사람들이 벌써 두 번째다. 

아니 아무리 막 던져놓은 물건이지만 저건 굿윌이 거둬 들여야지 저렇게 노골적으로 집어가다니.

저건 스틸인데,

아침부터 복잡해지는 마음이다. 

  

  비즈니스라고 벌여놓고 허구한 날 인터넷 질(!)이라는 지청구에도 오늘 챙겨본 고국의 소식. 

진도해역에서 사고를 당한 젊은 여선생의 장례식에서 딸을 떠나 보내는 전직 여교사였다는 어머니와 공무원이라는 아버지의 

그동안 오랫동안 참았다던 그 마지막의 통곡에 아침부터 눈물을 흘릴만큼 虛했다. 

 

 아내 말이기는 하지만, 사실 비즈니스 소중한 것도 모르고 귀한 시간 엄청 낭비했다.  

자연인 , 귀촌 일기, 100세 건강법,  있어 보이는 사람들의 비우는(?) 人生.. 

동영상 시청 후의 개운치 않고 떨떠름한 일과를 보낸 지가 벌써 몇 해째인가. 

경로당의 늙은이 꼴 임을 비로소 깨닫는다. 

늦은 점심을 마친 후 모처럼의 결심을 하고 방치된 책들을 정리한다.  노트북만 끼고 카운터를 지켜야만 되겠는가. 

낡은 구절이 눈에 띄어 쪼그리고 살펴보니 박목월의 하관이란 시다.


       ... 

       .. 

       너는 어디로 갔느냐 

       그 어질고 안쓰럽고 다정한 눈짓을 하고 

       형님! 

       부르는 목소리는 들리는데 

       내 목소리는 미치지 못하는 

       다만 여기는 

       열매가 떨어지면 

       툭 하고 소리가 들리는 세상. 



  

한국에 있는 내 막내는 아직 건강한데 새삼스럽게 왜 이럴까? 

잊고 지내왔던 형님 ! 이라는 정겨운 글자에 코끝이 찡해져 괜히 눈물을 떨구었다. 


 

 매일 반복되는 퇴근길.

 늦은 밤이지만 익숙해서 편안한 길이다.  자연림이 무성한 호수를 끼고 이제 조금 굽은  능선만 지나면 집이다.  

습관처럼 무심하게 코너를 돌아 나오는데 불쑥 나타난 훤한 보름달이 앞가슴에 안긴다.  

엉겁결에 갓길에 멈추었다. 


 광복 무렵의 어려운 시절,  시골농가에서 어렵게 구한 쌀을 자전거에 싣고 귀가하는 늦은 밤길에서 산모퉁이를 돌아 나오다 

불쑥 솟아오른 보름달의 황홀함에 발을 헛디뎌 자전거와 그 귀한 쌀을 길거리에 쏟았다고 언제인가 아버지께서는 말씀하셨다.  

선친의 기일이 얼마전 이었는데... 

한세대를 넘어 나의 아버지께서도 이런 감정이었을까.  

옛 생각에 뭉클해질 만큼 보름달이 한 아름 훤하여 눈물이 날 뻔하다.

 

 

  홍천에서 농사를 짓는 친구가 오랜만에 연락을 했다.


      " 이보게 웬만하면 이제 그만 들어오지. 

        언제까지 그곳에 있을 셈인가. 

        천엽이라도 같이해야 할 것 아닌가 "


딸아이가 손녀를 데리고 오랫동안 집에 와있어 부인의 상심이 크다는 말을 한참 후에나 이해했다. 

이 친구 꽤 울적했었나 보다.

 

늦은 밤 또 싸해지는 가슴, 

빌어먹을 요즈음 툭하면 눈물이 난다.        (May.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