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입양
비즈니스 특성상 하루에도 숱한 사람을 대해야 한다.
사람 대하기를 아주 꺼리는 성정이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따라서 깔끔한 사무실에 앉아 결재서류에 사인이나 하는 사람은 느끼지 못할 여러 군상들의 모습을 생생히
지켜볼 수 있음은 덤이라 할만하다.
머리카락을 길러서 기부를 했다는 랜디의 이야기에 놀라기도 하고 (이 친구의 이야기는 기회 되면 한번 해야겠다),
일부러 트럭까지 쫓아가서 트렁크에 이중으로 잠금장치가 되어있는 - 조준경 달린 셧건을 꼭 보여주겠다는 샘에게는
맞장구라도 쳐주어야 하며,
늙은 홀아비 (칠십이 훌쩍 넘은) 피셔의 새로운 동거녀에게 이쁜 숙녀라고 했더니,
빌어먹을 늙은이 듣기에 좋았던지 면전에서 귀밑이 허연 할멈에게 쩍쩍 입맞춤을 한다.
마약에 취해서 바닥을 기는 놈이 말썽을 부려 신고했더니 경찰차와 소방차가 대여섯씩이나 주차장에서 북적거리지,
월말이면 극빈자 수당 입금 확인차 이른 아침부터 들락거리며 수십 번 ATM (현금 지급기)을 긁어대어
짜증 나게 하는 녀석은 그냥 한 대 쥐어박고도 싶다.
매연 품어대는 이차대전 당시의 고물 짚을 끌고 와서 힘들게 구했다는 자랑은 그래도 참을만 하지,
부친이 한국전쟁에 참전했다는 이디오피아 출신 아자리의 특별난 한국사랑 (코리아의 광팬이다) 은 얼마나 날 피곤케 하는가.
그래도 제시카가 친구 대여섯과 함께 오면 반갑다.
제집 풀장에서부터 맨발로 뛰어들어 오는데,
물에 젖은 실 끈 같은 비키니만 걸쳤으니 말만 한 처녀들의 수박덩이같이 풍만한 앞뒤 몸매는 민망스럽긴 해도,
건강하고 아름답다.
이런 일도 있었다.
마감 무렵에 긴 가운을 걸친 여인네가 허둥지둥 (땡 하고 문을 닫으면 절대 안 열어준다는 걸 잘 알고 있다) 들어오는데 부여잡은
가운 사이로 적나라하게 보이는 것은 위아래 속옷도 입지 않은 아예 맨몸이다.
이런 진풍경을 어떤 직업이 겪을까 ?
각설하고,
오늘은 매주 두어 번씩 들러는 낸시가 왔다.
거진 십여 년이 훌쩍 넘은 말수 적은 고객으로 길 건너 밀링 공장에 다니는 여인이다.
오육 년 전쯤 암으로 남편과 사별했었는데 여느 이곳의 여인과는 달리 표정의 변화와 말이 거의 없으니 대충 인사만 한다.
선량하게 보이긴 하는데 뭔가 모르게 조금 처지고 우울한 느낌을 주는 여인이다.
그런데 오늘은 친정아버지 (낸시와 닮았다) 인듯한 노인네와 서너 살 먹은 동양 여자 아이를 데리고 와서는,
슬쩍 눈치를 보더니 아이를 차이나에서 입양했다고 한다.
아니 입양이라니?
분명 Adopted 라고 했다.
순간 얼굴이 화끈거려 괜히 시선을 어디에 둘지 모르게 당황스럽고 어쩐지 우세스럽다는 생각에 몹시 언짢아진다.
입양이라면 나의 조국 대한민국이 유명하지 않은가 ?
그래 저 조그마한 아이가 코리언이 아니라니 그래 그나마 다행이라는 말인가 ?
그런데 이 양반들이 아이를 입양했다니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낸시가 제 아이들 교육에 유달리 신경을 쓴 것 같지 않았을뿐더러,
버려진 아이들을 위한 일에 특별한 활동을 하는 것 같지도 않았고,
더욱이 그다지 넉넉한 형편도 아닌 것 같아 보이는 처지들이다.
입양에는 적어도 몇만 불이 필요하다고 하는데,
도대체 알 수 없는 일이다.
입양이라면,
아이 두 명 건사하기에도 벅차 했던 나에게는 지금까지도 언감생심이다.
그래서 입양을 하고, 하겠다는 사람들의 이야기에는 감동과 경이로움을 가졌었고,
홀트복지회인가 하는 곳은 또한 얼마나 아름다운 단체인가라고 생각 했었던 적도 있었었다.
인터넷 이것 정말 쓸만하다.
조금 수고를 했더니 꽤 쓸만한 정보들을 줄줄이 쏟아낸다.
캐나다는 매년 2,000여 명 정도 입양을 해외에서 하는데, 한국으로 부터 100여 명 정도를 받아들인다고 하며,
누적 입양아 통계로는 한국이 약 16만 명으로 세계에서 1위이고 누적 입양아의 3분의 1이 한국 아동 이었다고 한다.
입양을 지원하는 에이젼시들의 웹사이트 첫 페이지에는,
이디오피아, 자메이카, 잠비아, 타일랜드, 인디아, 차이나, 사우스 코리아, 베트남 등에서 아이를 입양할 수 있는데
아이 수입 가격이 나라별로 차이가 있지만, 대략 이만 불에서 부터 오만 불 정도라고 광고를 하고 있다.
여기에 언급된 나라 중에 (우리를 제외하고) 어디 쓸만하고 사람 살 만한 나라들의 이름이 있는가 !
미국은 어떨까?
입양아 출신인 제인 정 트랜카 (Jane Jeong Trenka) 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 우리가 천사로 알고 있는 홀트복지회는 오리건주에 본부를 두고 있습니다.
오리건주에서는 약 8,000명의 아이들이 부모 품이 아닌 주 정부가 운영하는 위탁 시설에서 살고 있으며.
그중 약 200명의 아이가 입양되는 날만을 기다리고 있지만, 홀트는 미국에서 아이들을 입양하지 않습니다.
한마디로 입양아를 보내는 여성과 아동의 권리를 무시하는 인권 후진국일수록,
미국 입양 부모의 입장에서는 골치 아픈 일을 줄일 수 있습니다.
친모의 권리를 내세우는 사람을 상대하지 않아 훨씬 편리하고 좋은 것이지요.
이렇게 해외 입양은 입양아를 친부모의 품과 아이의 근원으로부터 쉽고 깔끔하게 '절단'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고비용에도 불구하고 미국인들은 친모의 인권을 생각하고 배려해야 하는 골치 아픈 국내 입양보다는,
친모의 권리를 '말끔하게' 무시해도 아무 일이 없는 해외 입양을 선호하는 것입니다. -
해외 입양은 한 해에만 국제 시장에서 수십억 달러가 오가는 사업이라고 한다. 그래도 의문은 남는다.
캐나디언이나 미국인은 왜 적지 않은 돈을 지불하고 아이들을 입양하는 것일까 ?
어떤 자료에서는 정부의 지원과 혜택을 바라고 입양을 하는 사람들도 일부 있다고들 하고.
(웹사이트를 찾아보니 세제혜택이 상당하다고 선전을 한다)
가끔 성공한 입양아들의 모국방문을 시시콜콜 흥미진진하게 내보내는 개념 없는 기자들 탓에,
해외 입양에 대해 긍정적이고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는지 모를 일이다.
16만의 입양아 중 기사가 될만한 삶을 이어가는 입양아들이 얼마나 될는지,
싹수없는 기자 양반은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
한국전쟁이 끝난 지 이미 60여 년이 지났다.
해외관광을 떠나는 한국인이 매년 천만 명을 웃돌고,
우리가 우리들의 손으로 우리의 것 - 삼성, 현대, LG.. 제품을 전 세계인들에 공급하고 있다.
그 코리아가 OECD 가입국 중 유일하게 아프리카의 어디에 있는지도 모를 미개한 나라들과 같이 아동 수출을 한다고
웹씨이트에서 선전을 당하고 있다.
지속적으로, 끊임없이, 아무런 제동 없이, 무비판적으로 언제까지나 우리의 아이들을 떠나 보내어야 할까 ? (아니 수출이다)
아이의 검은 눈동자를 바라보는 게 쉽지가 않다.
이 아이가 코리언과 똑같이 생긴 탓인가 ?
조금은 어정쩡하게 그래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낯선 서양 노인네의 앞가슴에 안긴 어린아이의 가녀린 손과 쿠키 봉지를 바라보는 눈망울이 너무 선연하다.
구차하고 모멸스러운 기분 탓인지 글이 매끄럽지 못하다.
어디가 주무부서인지는 모르겠으나,
해외입양 - 이것 이젠 정말 그만두어야 할 것이다. (Nov.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