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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한그루 심어야 하겠습니다

단풍들것네 2020. 5. 30. 01:07

전국적으로 비가 내린다는 고국의 뉴스를 보고 있습니다.

뉴스 끝날 즈음에 전해지는 날씨 정보는 

날씨에 민감한 직업을 가진 분들에게는 중요한 정보일 것 같습니다.

 

이런 날씨 뉴스를 전하는 아나운서들을 보고 있으면

가끔 안타깝다는 느낌과 한 편의 인형극을 보는듯한 생각이 들어요.

이쁜 외모와 잘 차려입은 차림새 때문이기도 하지만,

잘 외운 문장처럼 또박또박 읊조리는 것도 부자연스럽고

손짓과 몸가짐이 극진하게 손님을 접대하는 종업원의 태도처럼 보여

실을 묶어서 뒤에서 조종하는 인형극을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날씨정보를 위해서 준비했을 노력과 몸단장에 비해 할당된 시간이 너무 짧은듯해서

그런 느낌이 들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전국적으로 비가 내린다는 소식에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되는 날입니다.

 

 

그런데 전국적으로 비가 내린다니

우리나라가 그렇게 넓은 곳은 아닌 것 같지요.

 

저는 눈을 감고서도 우리의 국토를 떠올릴 수 있습니다.

서울에서 출발하여 서해바다를 따라 변산반도를 지나고

여수를 거쳐 남해안을 가로지르면 부산입니다.

동해 쪽을 거슬러 올라가면 강릉을 지나 강원도의 속초까지 손에 잡힐 듯 그려집니다.

발 디뎌보지 않은 곳이라고 해도 가본 듯 정겨운 곳,

낯선 곳에 사는 그들의 일상이 생소하지 않고 나의 삶인듯한 정경이지요.

 

그런데 이렇게 아기자기하고 손에 잡힐 듯 조그마한 국토지만

그래도 지방마다 다른 점이 더러 있는 것 같아요.

 

특히 전라도와 경상도는 도계를 접한 곳이고

아침, 점심, 저녁 시간대도 같은 곳이지만

그런데도 다른 점이 많아요.

 

오래전 법정 스님의 말씀이 떠오릅니다.

출가하여 경남 통영의 작은 암자에 계실 때

경상도 음식이 입맛에 맞지 않아 고생을 했다고 했습니다.

정감 있는 전라도 말에 익숙했던 스님께서는

목청 높고 억센 경상도 말이 낯설었고

젓갈도 짜기만 하고 곰삭은 맛이 없다고 했는데

자그마한 국토지만 말씨와 음식 맛이 틀렸다는 뜻이겠지요.

그런데,

스님께서는 출가하셨지만 젓갈을 즐겨 드셨던 것 같네요.

 

 

지금 이곳도 비가 오랫동안 내리고 있습니다.

보통 한두 시간이면 게이고

장맛비처럼 줄기차게 내리는 경우를 볼 수 없는데

어쩐 일인지 종일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이곳은 동서의 시간대가 4시간 반 정도 차이가 납니다.

단일시간대를 사용할 수 없을 만큼 넓은 곳이지요.

 

그런데 참 이상해요.

 

영어를 대충만 알아듣는 수준이지만,

동서의 억양과 사투리가 그렇게 달라 보이지 않고

음식도 지역마다 그렇게 별반 차이가 없는 것 같으니

조그마한 지역이지만 음식과 말의 차이가 많은 우리와 비교하면

참 이상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니 전국적으로 비가 내린다는 날씨 뉴스가 생경한 곳이지요.

일부 지역은 월요일 아침까지만 해도 눈이 많이 쌓였으니

계절에 맞지 않게 서늘한 봄입니다.

겨울이 긴 편이고 눈이 많은 곳이기는 하지만

올해는 전염병 탓인지 날씨마저 유별납니다.

 

전염병이 수그러 들 기미가 보이지 않고

5월 중순에도 눈바람이 거세니,

이번 여름은 매우 짧고 특별한 여름이 될 것 같습니다.

콘서트도 없고 박람회도 없고 아마 캠핑도 없는 여름이 될 것이며

평상시처럼 사업도 잘되지 않을 것 같으니, 

우리는 개인의 일상과 직업적인 삶에서도 새로운 준비를 시작해야 할 것 같아요.

 

벌써 두 달째,

사회적으로 고립된 매일이 쉽지 않습니다.

전 세계인들이 겪고 있는 아픔이지요.

우울하고 불편한 일상에서 하릴없는 사람들은 강아지와 함께 거리를 산보하는 일밖에 할 일이 없습니다.

답답해서 아침 일찍 찾은 공원도

출입이 금지되어 사진 한 장만 담고 왔습니다.

 

 

이 재앙 같은 전염병은

절제하지 않고 오만했던 우리에게

자연이 내린 경고가 아닐지 모르겠습니다.

 

이참에

얼굴과 모습을 비추는 거울 같은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나를 비출 수 있는 거울 같은 것이 하나씩 주어진다면,

또 스스로 그런 기회를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저마다의 인연과 사연이 다르고

쌓여있는 노여움과 원망이 크기만 해서

비록 언행일치의 삶을 살아오지 못했더라도,

 

늘 푸른 눈으로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나를 비출 수 있는 거울 같은 것이 하나씩 주어진다면 좋겠습니다.

 

오만하기만 했던,

욕심과 거짓을 절제하지 못했던 자신을,

겸손해진 자세로 비쳐볼 수 있다면

저마다 가슴에 새겨진 향기 하나쯤은 찾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 향기를,

내 가슴 깊은 곳에 숨어있을 자신만의 향기를 찾을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내일, 모레쯤은

평상을 되찾는 날씨가 될 것이라고 합니다.

오랫동안 집에만 머물러 신경이 날카로워진 아내를 위하여

고사한 나무를 파낸 뒤여서 휑하게 비워 보이는 앞뜰에 상록수 몇 그루를 심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