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괜찮다 괜찮다

단풍들것네 2017. 7. 9. 07:21

 당분간 어머니를 집으로 모셔야겠다는 아우의 전화를 받다. 
연초의 통화에서도 정정하셨는데, 종일 막내의 목소리가 귓전을 맴돌아 일찍 하루를 마감했다.
연세가 많으니 작은 소식에도 철렁해지는 마음이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후 몇 해를 홀로 고향 집을 지키셨던 어머니,
오랜 설득 끝에 작년 이맘쯤 서울로 옮기셨다.
아직은 따로 계시고 싶다는 말씀에 막내의 거처와 가까운 곳에 조그마한 아파트를 구하게 되어
그나마 조금은 든든했었는데, 고르지 못한 날씨에 건강을 해치신 모양이다.
 
 아버지의 장례식을 마치고 되돌아오기 전날 마주했던 가족모임. 

어머니를 걱정하던 누님의 눈길이 새삼 떠오른다.
되돌아가야만 한다는 내 모습이 어찌 불효 막심하게 보이지 않았을까.


 육십 해를 함께하셨던 세월을 뒤로하고 이제는 홀로 되신 어머니.


    ' 괜찮다 괜찮다 '


넉넉하고 푸근했던 그 음성과 치마폭은,
이제는 바래어져 주름지고 작아져 어느새 새털같이 가벼워졌다.

벌써 육 년 전의 일이다.
 
 연로한 부모님이 고국에 계시는 이민자들 모두 어찌 내 마음과 같지 않을까.
이제 팔, 구십 인 세대의 여느 부모님같이 나의 어머니께서도 모진 세월을 지나오신 분.
다행히 까칠하여 情 없던 장남보다 막내 아우를 편하게 생각하셨던 어머니,
그 막내가 곁에서 수고를 마다치 않으니 그 마음 씀씀이 고마울 뿐이다. 

        

             어려서 나는 램프불 밑에서 자랐다.
             밤중에 눈을 뜨고 내가 보는 것은
             재봉틀을 돌리는 젊은 어머니와
             실을 감는 주름진 할머니뿐이었다.
             나는 그것이 세상의 전부라고 믿었다.
             조금 자라서는 칸델라불 밑에서 놀았다,
             밖은 칠흑 같은 어둠
             지익지익 소리로 새파란 불꽃을 뿜는 불은  
             주정하는 험상궃은 금점꾼들과
             셈이 늦는다고 몰려와 생떼를 쓰는 그
             아내들의 모습만 돋음새겼다.
             소년 시절은 전등불 밑에서 보냈다,
             가설극장의 화려한 간판과
             가겟방의 휘황한 불빛을 보면서
             나는 세상이 넓다고 알았다, 그리고
 
             나는 대처로 나왔다,
             이곳 저곳 떠도는 즐거움도 알았다,
             바다를 건너 먼 세상으로 날아도 갔다,
             많은 것을 보고 많은 것을 들었다.
             하지만 멀리 다닐수록, 많이 보고 들을수록 
             이상하게도 내 시야는 차츰 좁아져
             내 망막에는 마침내
             재봉틀을 돌리는 젊은 어머니와 
             실을 감는 주름진 할머니의 
             실루엣만  남았다.
 
             내게는 다시 이것이 
             세상의 전부가 되었다.
 
                 [신경림, 어머니와 할머니의 실루엣 – 전문]   



 가까이서 모시고 싶다.
자리끼도 챙겨 드리고 손발도 주물러 드리고 선친의 기일도 함께 챙겨드리고 싶다. 
기뻐하신다면 어머니 앞에서 고깔모 쓰고선 재롱인들 못 부릴까 .
큰 탈 없이 빨리 원기 회복하시기를 바라야겠다.


이제는 정말 되돌아가야 할 때인가 ...                                  (Jan.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