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글둥글한 얼굴
동네 어귀에 은퇴자들을 위한 콘도를 짓고 있습니다.
주택가에서는 더물게 높은 건물로 견고하고 웅장하게 보입니다.
대학 문 마을이라는 콘도 이름이 적혀 있지만,
이곳 대학 졸업자에게만 입주 자격이 주어지는 것은 아닐 텐데
대학 후문 근처라 콘도 이름을 그렇게 정한 것 같습니다.
저는 이곳 대학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고
더욱이 입주비가 적지 않아 보이기도 해서
대학 문 마을이라는 이름이 조금 껄끄럽습니다.
저곳에 입주하면
근심 없이 행복하게 지낼 수 있다는 모습을 보여 주고 싶은지
선전용 광고판에 노인 부부가 활짝 웃고 있습니다.
그런데
건물 앞쪽을 스쳐 지나는 짧은 순간이지만,
묘한 기분이 들어 잠깐 멈추고 지켜봅니다.
각진 벽돌로 쌓은 건물의 흐트러짐 없는 단단한 모습과
둥글둥글해서 선량해 보이는, 모난 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광고판 노인의 얼굴이
무척 대조적입니다.
세월 따라 둥글둥글 부드럽게 변해가는 노인들이
저 철옹성같이 육중한 고층건물에서
선전판의 광고처럼 행복하고 편안한 여생을 보낼 수 있을는지 모르겠습니다.
야물고 탄탄하게 보이는 건물과
둥글둥글 물렁해 보이는 노인의 얼굴이
그래서 참 이질적으로 보입니다.
오래전의 일이지만,
주변의 사물과 사람이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이런 생각을 깊은 산속에서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백두대간 중간쯤의 충청도와 경상도를 잇는 높은 고갯길을 조령새재라고 합니다.
예전엔 하늘을 나는 새도 넘기 힘들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 하지요.
그 새재 꼭대기에 젊은 부부가 쉼터를 운영했습니다.
고개를 넘는 길손들을 위했던 옛날 주막처럼,
등산객이나 관광객을 상대로 숙식과 술을 파는 영업을 했지요.
직접 빚은 막걸리가 일품이라며
일행들은 밤새워 술독을 전부 비우고 탄성을 질렀지만,
산중에 퍼지는 고기 굽는 냄새와 불룩했던 주인의 쌈지 주머니가
예스러운 이름의 조령 새재와 어울리지 않아 실망스럽다고 여겼지요.
아마,
세상 잇속에 밝지 못했던 젊었을 때라 그랬던 것 같습니다.
키 낮은 잡목을 헤치고 살포시 드러나는 고갯길을 오르면
새재의 꼭대기엔 조령관문이 있습니다.
근세에 이전의 성벽과 관문을 복원했다고 했는데
장방형 석재의 성벽과 관문은 웅장하고 단단해 보였습니다.
가파른 고갯길을 오느라 가빠진 숨과 땀을 다독이며
웅장해서 가까이 다가 서기가 망설여졌던 관문 앞에서
옛사람들을 떠올렸습니다.
봇짐 하나에 나귀를 의지하며 힘들여 고갯길을 오르던 길손들은
눈앞에 턱하고 나타난 저 웅장한 관문을 마주하고선,
그 어떤 느낌이 들었을까요?
아늑한 주막의 뜨끈한 술국 끓이는 정경을 기대하지 않았을지 모르겠습니다.
옛사람들은,
이민족과 마주한 접경 지역도 아닌 국토의 한복판인 산속에
게다가 키 낮은 잡목만 듬성한 한적한 고갯길에
무슨 까닭으로 저렇게 웅장하고 단단한 성벽과 관문을 세웠을까요.
경상도와 충청도의 험준한 고갯길을 오가며 먹고살아야 했던
백성들의 가난한 봇짐을 헤집고
번쩍번쩍 정신 들게 사납게 볼기짝을 내려쳐서
나라님과 고을 사또의 위엄을 위한 짓이라 여겨져 어울리지 않는 구조물이라 생각했지요.
아마,
세상의 이치를 미쳐 깨닫지 못했던 젊었을 때라
세상을 다스렸던 사람들의 안목에 미치지 못한 탓이었던 것 같습니다.
삼십 년도 훌쩍 지난 오래전 고국의 기억이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이국의 노인 전용 콘도앞에서 왜 갑자기 떠오르는지 이상한 일이지요.
아무튼,
저 노인 전용 콘도는
위압적인 고층 석재 건물보다는 부드러운 목재로 다듬어진 낮은 층수의 건물이 어울릴 것 같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보통 사람들은 나이가 들면
저 콘도 광고판의 노인들처럼
둥글고 편안해진 부드러운 모습으로 한결같이 변해 가는지 모르겠습니다.
오래전 조령 새재에서 쉼터를 운영했던 그 부부도
이제는 둥글둥글 편안해진 모습으로
세월처럼 잘 익은 막걸리를 빗고 있겠지요.
그리고,
저는 나이를 먹어가지만 둥글둥글 편안한 모습이 아니라고 하니
부드럽게 변해가는 보통 사람 축에 들지 못하는
여전히 특이한 사람으로 남아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여러분은,
조금씩 나이 들어가면서 모두 둥글둥글 편안한 모습들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