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인종차별

단풍들것네 2019. 11. 2. 08:15

올리비아 핫세는 영화 로미오와 줄리엣의 여배우로

빡빡 머리때 단체관람했던 오래된 영화 속의 주인공이다.


난 그때 이국의 백인 여인이 그렇게 이쁜지를 처음 알았다.

까맣고 긴 생머리에 조각같이 다듬어진 조그마한 얼굴,

난생처음 보는 초록빛의 눈동자,

자그마한 몸매에 터질 듯이 풍만한 젓 무덤에 내 가슴은 그 얼마나 뛰었던가,

며칠 꿈속에서도 그 얼굴이 보였는데,

어떤 친구는 몽정을 했다고도 했으니

나 혼자서만 이쁜 얼굴로 보지 않았다는 말이니 오래된 기억이다.



백인 아이들,

정말 이쁘다.


이들이 이야기하는 백인의 정형적인 모습

흰 피부, 푸른 눈, 금발

- 햇볕에 반짝이는 금발은 정말 감탄스러울 만큼 이쁘다.


후후,

그런데 그 모습,

잠시, 아주 잠시 어릴 적 한때의 겉모습일 뿐,


백인이 천사같이 어여쁜 인종이 아니라는 걸 

그들이 매번 초코렛 시도 때도 없이 건네는 인종들이 결코 아님을

나는 이제는 안다.



이 글을 쓰면서 올리비아 핫세의 최근 모습을 검색해보니

영락 없이 쭈굴쭈굴 사납게까지 보이는 할멈이다.

칠순 가까이 된다고 하니 그렇게 가슴 졸였던 모습도 세월의 겹이 비껴 가지는 않았다.


올리비아 핫세도 그렇지만,

백인 여인들,

삼십 줄만 들어서면 대부분 우리의 오십 대처럼 형편없이 푹 쳐지고 늘어지고

일부 지저분한 금발의 백인 여인들은

비듬을 어깨에 허옇게 묻히고 다니기도 하고

여름에는 팔꿈치에 허연 때를 달고 다니기도 한다.

금전에 대한 욕심,

똥구녕 까지 차인것도 보인다.


저녁 먹고 가게에 오는 금발의 백인 여인들,

얼마나 풍성한 저녁을 했는지

거기에 반주까지 한잔한 경우에는 헹구지 않는 입에서 풍기는 냄새는 정말 역겹다.

숫자 열자리 만 넘어가면 손가락으로 계산을 해야 하는 이 미련한 인간들이,

나의 영어가 서툴고 억양이 엉망이라고

가끔 이런 인간들이 뒤에서 흉보는 듯함을 나는 느낀다.


ㅎㅎㅎ~


 


인종차별이라면

가장 먼저 미국의 흑인을 떠 올린다.


광활한 남부 농장에서 채찍질 당했던 흑인 노예들을 위하여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내 아이들이 피부색을 기준으로 평가받지 않는 그 꿈이 있습니다'

라고 했던 마틴 킹의 절규를 받아들였던,

아메리칸드림의 나라.


그런데 범죄가 의심되는 흑인이라면 무자비하게 조준 사살되는 백인들의 나라.

흑인 경찰이 범죄로 의심되는 백인을 길거리에서 조준 사살했다면

아마도 나라가 뒤집어졌을 테니,


백인이 주류인 사회에서

백주대로에서 총 맞아 죽는 흑인에 비하면,

여타 인종이 차별받는 일은 조족지혈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들이 매일 만지는 달러 지폐에

요렇게 인쇄되어 있다.


  "In God we trust"


빌어먹을,

어느 썩어 빠질 놈의 신이 사람을 짐승 잡듯 하라고 했노?

아름다운 나라, 미국(尾國)이다.



 

다문화주의를 표방하는 캐나다에서는 법적으로 인종차별을 금지한다.

인종차별은 나쁜 것이라 교육받으며

가정에서 그들 고유의 언어 사용을 장려하기도 한다.

따라서 공식적인 인종차별은 없다고 생각해도 될 것 같지만,

인종 간의 차별이 없다고?



예 하나,

몇 해 전 밴쿠버에서 일어난 한인 가족들의 이야기.


아들 내외의 가정불화로 경찰이 출동하여 출입을 통제했는데,

늙은 부모들이 아들 집을 들어가려고 우기다

경찰에게 짐승 잡히듯 무자비하게 팔이 꺾이고

계단에서 질질 끌려가는 모습이 방영된 적이 있었다.


국내에서도 인종차별이라 공분을 했었는데,

잘못은 경찰의 접근금지 명령 - 이게 주요한 팩트이다.

공권력을 무시한 노인들의 잘못이 원인이지만,

인종차별이 없었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예 하나 더,


재작년에 나의 집 한 블록 떨어진 주택가에서

한인 여학생 아이가 자전거를 타다 백인 여자가 운전하는 차에 치여 그 자리에서 사망했다.


주택가에서 자전거 타는 아이를 죽인 운전자,

이거 무지무지 엄청난 큰 사건이다.

더구나 아이, 임산부, 장애자에 대해서는 심할 정도로 사회적인 보호와 시스팀이 작동한다는 이 나라,


그런데 그날 지역신문에

아이들이 동네에서 자전거 타는 법규를 잘 지키도록 교육을 강화해야 되고 ...


이 죽일 놈의 기자 새끼

운전자가 잘못했다는 이야기는 거의 없다.

신문 논조는 아이가 자전거를 타고 왜 차도로 침범했냐 나무라는 투다.

나는 그날 피가 거꾸로 솟듯 부들부들 떨렸어니

그 부모들은 오죽했을까.


사고당한 아이가 백인이었다면,

그놈의 기사를 실은 기자 새끼와 해당 신문, 그리고 운전자는 부모들로부터 몇백억짜리 고소를 당했을 것이고,

당연히 신문의 논조도 달랐을 것이다.



예 하나 더,


매년 여름이면 이곳엔 노숙자의 연례행사가 열린다.

지역 신문에서는 노숙자들을 심층 취재하는 연재 기사를 쓰기도 하고,

작년에는 이런 기사가 하나 실렸다.


임신한 노숙자가 도움을 청하는 사진을 첨부했는데.

리포터(기사 작성자)는,

금발에 푸른 눈을 가진 젊은 여인이 눈길을 끌어 인터뷰했다고 기사의 첫 줄에 쓰고 있다.


 - 금발에 푸른 눈을 가진 여인이 노숙자라니 관심이 갔다는 말은,

   완벽한 백인 (금발에 푸른 눈)이 우월하다는 뿌리 깊은 이들의 잠재의식이라 생각해도

   무방할 것이다.




산업혁명 이후 부를 축적하고 기계문명화한 서구 제국의 흰둥이들이

식민지를 경영하며 타 인종들을 열등하다고 생각한 것이 인동 차별이다.


즉 흰색이 우수하니 그 이외의 열등한 종자들 위에 군림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발상인데,



조금 더 짚어 볼까,


식민지의 타 인종을 보니 체격도 형편없고 짜리몽땅하지

넓적한 얼굴에 눈은 보일랑 말랑 하지

색깔은 거무튀튀하고 누리끼리하지

사는 곳이라 고는 움막 같은 곳에서 올망졸망 낑겨서 생활하지

어린 아이도 알아듣는 자기네들 말을 한마디도 못 알아듣지,


아이고, 이것들이 아주 형편없는 족속들이네,

이런 지경이었을 테니

식민 지배 이후 고착된 그들의 우월 의식을 탓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우리는 어떤가?


다문화 가정에서 일어나는 숱한 동남아 출신 여인들에게 행해지는 구타와 모멸과 경멸스러운 시선,

빈국 출신 노동자들에게 행해지는 비이성적이고 비인간적인 행위들.


서구 백인들이

흑인들을 짐승 잡듯 뚜드려 잡고

타 인종들을 경멸하며 인종차별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지 모르겠다.




약자 위에서 군림하고 지배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라는 말이 있다.

그래서 동서고금이래 인종차별이 없었던 시대는 없었다고 한다


이집트의 박해를 벗어나기 위한 유대민족의 출애굽기,

노예, Slave라는 말의 근원인 되었다는 중세기 발칸반도에서의 슬라브 민족들의 고난

유럽 지중해의 노예무역,

남북전쟁의 원인이 된 미국의 검둥이 노예들,

우리나라에서도

쌍놈들, 불가측 천민인 백정들이라고 하여 양반들과는 근원이 다른 인종들인 노비들이

대한 제국 때까지 엄연히 존재했지 않은가.



서양 백인종이 타 인종에게 행하는 인종차별을 탓하기 이전에

우리의 모습을 되새기고 뒤돌아 보아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본다면

인종을 넘어 조건 없이 베푸는 사랑,

이것 말은 쉽지, 아무나 할 수 없는 어쩌면 위대한 일이다.



그리고

서두 없이 쓴 글이 길어져 본론을 빼먹은 것 같아 아쉬운 것 하나,


인종이 다르면 대부분 배척당하고 차별받는 세상에서

우린 왜 인종이 다른 백인은 우대하고 차라리 떠받드는 사회인지

그리고 남의 나라 국기는 왜 시도 때도 없이 흔드는지

정말 알 수 없고 불가사의 한 일이다.



기회 되면 이것과 관련된 우리의 단점을

이곳에서 내가 실제 접하고 매번 얼굴 뜨겁게 달아 오르도록 느낀 점을 한번 올릴 예정이다.

백인들을 동경하는 우리의 실상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