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네가 이상하다면 나 또한 이상하고

단풍들것네 2019. 11. 2. 08:09

제이콥 요 녀석,

오늘도 신발을 잘못 신었다.


요 녀석아,

왼쪽 신발은 자크가 왼쪽

오른쪽 신발은 자크가 오른쪽 이지.


아니야,

아빠가 오늘부터 쌩스기빙 이래.


요 녀석아

신발 바꿔 신어야지.


이쪽은 저쪽

저쪽은 이쪽으로


아니야,

아빠가 오늘부터 쌩스기빙 이래.


하,

그래라

신발 바꿔 신는 게 뭔 대수냐.


몰랐네,

나는 늙은이고'

네가 어린걸.


그래 네 녀석이 옳구나

내가 이상한 사람이지.





내 집 뒤뜰의 나뭇 가지가 자기 집 뒤뜰 너머까지 벋힌 것이 마땅치 않은지

옆집 남자가 싫은 내색을 하는 것 같다며

언짢은 기색의 아내는 그 일로 종일 마음을 쓴 모양이다.


퇴근한 나에게 저녁은 제쳐두고

어떤 나뭇가지를 잘라야 할지 찍어 두었던 사진까지 보여준다.


이웃에서 나뭇가지 하나 가지고 뭘 그렇게 신경을 쓰냐며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 했지만,

아내가 저렇게 신경을 써니

내일이 마침 추수 감사절 휴일이라 시간을 낼 수 있으니

뜸 들일 것도 없이 옆집 너머까지 벋친 나뭇가지를 잘라야겠다.



사다리 타는 일이 달가운 일은 아니지만

조심스럽게 사다리를 타고 나뭇가지를 잘랐다.

밑에서 사다리를 붙들고 있는 아내는

나뭇가지 잔챙이 하나 옆집으로 떨어질까 봐 참견을 한다.




나무를 자르면서 옆집을 흘끔 보았더니

여전히 쥐 죽은 듯 고요하다.




이 옆집 이웃은 특이한 사람들이다.


이십여 년 전쯤,

동시에 집을 지은 스므 남짓 되는 이웃들이 대부분 이사를 하고

몇 집 남지 않은 오래된 이웃인데,

사실은 이름도 모르고 뭘 하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다.


이십 년 동안

내가 옆집 여자를 두서너 번 본 것이 전부인데,

차를 탄 채 차고로 들락거리는 모습을 먼 발치로만 보았으니 얼마큼 나이가 되는지는 전혀 알 수 없고

다만 까만 머리로 보아 아시안 인 것으로 만 생각한다.


낮 시간에 집에 있는 시간이 많은 아내 말로는

중국 여자 같아 보이기는 한데,

아내도 옆집 여자를 먼 발치에서 본 것이 손꼽을 정도라고 하니

매우 이상한 사람들이다.


날씨 좋은 날에도 전혀 바깥에 나오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잔디도, 눈 치우는 일도 모두 일하는 사람들을 시켜서 한다.

집 주위에는 방범 카메라를 잔뜩 설치해 놓았고.


남자는 대여섯 번은 정면으로 마주친 적이 있는데,

처음 집 짓는다고 땅 파기를 할 때 우연히 악수를 한 적이 있고

이후로 집 주위를 한 바퀴씩 둘러보는 그와 눈인사를 한 적이 있지만,

뭔가 가까이 하기가 망설여지는 백인 남자다.




아이고

수고했네.

아주 신경 써이는 사람들이라

일찌감치 손을 보아야 했었는데.


한시름 놓았는지

그제서야 아내가 편안한 얼굴이 되었다.



허참,

이 보시오, 마누라,


우리 생각에는 저 사람들이 이상하지만,

저 사람들은 우리가 달갑지 않고 이상한 사람들 일 수도 있답니다.

이제 나뭇가지 쳐 내었어니 신경 쓰지 마세요.




추수감사절이니

거리가 한산하다.

가게 한 바퀴 둘러보러 나온 길,

 

윤기 자르르 흐르는

새로 페이빙한 주차장의 아스팔트 까만색이 이쁘다.


텅 빈 주차장 엔

부는 바람에

마른 잎이 굴러


사각 사르륵 ~

사르륵 사각 ~

싸아아 사르륵 ~


메말라서 이뻐 보이는 아름다운 소리가 난다.


나와는 다른 생각을 가진 여러 사람들은,

콘크리트와 아스팔트 도심의 거리가 삭막하다던데,


나는 어째서 텅 빈 주차장의 까맣고 반질거리는 아스팔트가 이렇게 이쁠까?

어째서 

메마르고 딱딱하기만 한 곳에서 이런 오케스트라를 연주할 수 있을까?



사아 아~

스르륵~

스르륵 싸아 아~


쓸쓸한 듯 아름다운 소리,

메말라서 담백한 듯 향기로운 소리.



집으로 되돌아오는 길

낯설고

부대끼는 사람들의 왕래가 뜸하다. 


후후,

네가 이상하게 보이면 

너는 내가 별스러운 사람으로 보일테지 ㅎㅎ



새삼 주위가 아름다워,

고마운 휴일의 오후,


벌써 단풍은 담뿍 여물었어니 

쓸쓸하여 아름다운 계절이 물러가고 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