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소박한 진실

단풍들것네 2019. 4. 21. 00:39

내일모레가 부활절이라 긴 연휴다.


서둘러 퇴근한 사람들은 가족을 찾고 또는 휴가를 떠나 거리는 벌써 한가한데

이미 매장도 썰렁하여 연휴에 특별한 계획이 없으니 뒤숭숭하기도 해서

차라리 바쁠 때가 낫다는 생각을 하며 건성건성 노트북을 살피는데,


반가운 음성으로 이름을 부르며 들어서는 남자의 목소리에 깜짝 놀랐다.

히잡을 쓴 여인과 여자아이가 함께 들어온다.

긴가민가?

오 육 년 전쯤에 고국으로 돌아간 사우디아라비아 출신의 야신이라는 젊은이가 아닌가.

반갑게 악수를 하고 등을 두드렸다.


이곳 사람들의 이름은 아직도 익숙하지 않아 단골손님의 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하니

불친절하고 건방진 주인 놈이라고 공연히 오해를 사는 편이지만,

이 친구 이름은 분명 생각난다.


젊은 부부가 이곳 대학원에서 공부를 했었다.

석유의 나라 출신답게 공부를 마치면 귀국하여 케미컬 엔지니어링 일을 하겠다는 친구였는데

부인은 경영학 공부를 한다고 했다.

이 부부와 특별한 관계가 있었던 건 아니지만,

특이한 인연이 있어 기억나는 친구다.



어느 날,

눈만 빼꼼히 내어놓고 얼굴과 전신을 까만 천으로 두른 전형적인 아랍 복장의 여인이

조그마한 계집애와 함께 와서는 매장을 한동안 서성이고 있다. 

이슬람 여인들은 물건을 잘 훔치며,

트집을 잘 잡는다는 말이 있고,

특히 낯선 모습과 무슬림에 대한 불편한 선입견을 가진 터라 신경이 쓰였다.

 

가만히 지켜 보았더니, 

에비앙 물을 가지고 카운터로 다가서는데 영어를 한마디도 하지 못한다.

눈만 빼꼼 보이니 나이는 물론 어떤 사람인지 감을 잡을 수가 없는데,

아무리 좋게 보려고 해도 도대체 그슬리는 전신을 감싼 시커먼 천의 느낌이 섬뜩하기도 해서

손님이지만 몹시 불편하고 기이한 상황이다. 


그런데

지갑에서 꺼내는 돈이 처음 보는 지폐다.

짐작으로는 꼬물거리는 글자 형태로 보아 아랍계 지폐인 것 같은데,

아주 난감한 상황이다.

문제를 만들고 싶지 않으니 천천히, 최대한 정중하게 이돈으로는 물건을 살수 없고 

캐나다 지폐를 보여주며 이게 필요하다며 손짓 발짓으로 설명을 했다.


보통 이렇게 말을 못 하는 경우에는 괜히 어색한 웃음을 짓는 편인데,

의외로 의젓하다.

캐나다 지폐를 가리키는 걸 보아 나중에 가지고 오겠다는 손짓인가 보다.

잠깐 망설이다 그만 그냥 가져가라고 했더니 

고맙다는 눈짓을 하며 굳이 아랍계 지폐를 놓고 갔다.


가린 얼굴 속의 언 듯 보이는 까만 눈이 깊고 어질어 보이는 눈매여서 

선 듯 그냥 가져가라고 했는지는 모르겠다.


저녁쯤에

젊은 부부가 와서는 에비앙 물을 사간 사람이 장모인데

물을 바꿔 먹고 배탈이 나서 아주 난감했었는데 고맙다며 돈을 지불했다.

아랍계 지폐를 돌려주었더니 사우디아라비아 지폐인데 기념으로 가지라고 한다.

부부가 공부 중이라 장모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일부러 와서 

세 살배기 딸아이를 돌본다고 덧붙였다. 


그렇게 알게 된 부부인데,

야신은 덩치가 다부지고 구레나룻이 잘 어울리는 아주 쾌활한 젊은이였다.


부인은 얼굴을 가리는 검은 베일을 하지는 않았지만, 

온몸을 가린 검은 천의 의상에 조신한 느낌의 여인이었고,

세 살배기 딸애는, 

언제나 엄마의 긴 드레스를 꼭 잡고는 뒤에서 숨어서 까만 눈동자를 초롱초롱 굴리는 이쁜 아기였다. 

농담으로 너희 나라에서는 남의 부인이나 여자아이의 손잡는 걸 금하지 않느냐고 하면

젊은이답지 않게, 

이곳이 사우디아라비아가 아니지 않냐며 호탕하게 웃던 친구다.


그런데 

아무래도 그쪽 풍습을 완전히 지울 수는 없었는지 부인이 밝게는 웃지만, 

조금은 쑥스러워한다는 느낌이 들었고 딸아이에게서도 그런 느낌이 들었던 걸로 기억한다.

공부를 마치고 귀국한다며 

나의 품에 딸아이를 안기고선 폰으로 기념사진도 찍었던 나의 젊은 친구.

그 친구가 뜻밖에 오늘 방문을 한 것이다.


이 년 전에 다시 캐나다로 컴백하고는 옆 도시에서 직장을 잡았다는데 

대학원에서 같이 공부했던 친구를 만나러 오는 길에 내 얼굴을 보고 싶어 왔다고 한다.

젊은 친구에게 반갑게 악수를 하며 

네 부인이 이제 캐네디언이 되었지만,

아무래도 포옹은 안되겠지라고 했더니,

부부 함께 깔깔거리며 따라 웃었다.

검은 드레스는 벗어버리고 이제는 히잡만 쓴 부인이 참 곱다. 


딸아이도 훌쩍 자라 제법 소녀티가 난다,

이전 수줍어하던 태도도 변해 아주 밝은 아이가 되었길래

대하기가 한결 편해서 날 알아보겠느냐 물었더니 

밝게 재잘거리며 대꾸를 해서 녀석과도 악수를 했다.


특별한 사귐 없이,

그저 조그마한 가게의 주인과 손님으로 만난 사람들이지만,

함께 웃으며 인사를 나눌 줄 아는 젊은이들의 흐뭇한 부활절 선물을 받은 날이다.



동양의 관습에 익숙한 나이 든 나와 

엄격한 계율 사회 속의 저 젊은 사람들이 다른 것인가?


옷차림이 익숙하지 않아,

생김새가 낯설어,

관습이 색달라,

종교가 틀려서


사람 사는 것이 다른 것일까.


자신 보다 연로한 사람에게는 의지가 되어 주고

같은 이웃에게는 믿을 수 있는 편한 벗이 되고

어린 사람에게는 따를 수 있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는 

어떤 성현의 말씀처럼


어떤 사람이던

귀하고 

아름다운 존재라는 


소박한 진실을 되새긴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