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져누운 아내(2)
며칠째 방치된 뒤뜰을 정리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뿌리를 들어내고 있는 시드 몇 그루에 흙을 덮어서 물도 듬뿍 주어야겠고.
어지러이 널려있는 삽, 작은 쇠스랑,,, 쏘일, 멀치등도 대충 정리를 해야 될 것 같은데.
주섬주섬 챙기다 보니 작은 호미가 보인다.
이 호미는 언젠가 한국 갔을 때 몇자루 챙겨서 온 것이다.
정원 가꿀 때엔 이 조그마한 한국산 호미만 한 것이 없다고 아내가 무척 요긴하게 사용하는 물건이다.
깨끗이 씻어 잘 챙겨 두어야겠다.
비록 흡족해하진 않겠지만, 나름 땡볕에서 반나절을 뛰어다녔더니 대충은 정리가 된 것 같아 그래도 조금은 홀가분하다.
땀을 식히려 그늘에 털썩 않았더니 그제야 주위가 찬찬히 눈에 들어온다.
이렇게 호젓이 뒤뜰에 나와 본 것이 언제쯤이었을까 ?
내 집 뒷마당 이지만 내겐 새삼스러운 곳,
아내는 매해 한철을 꼬박 이곳에서 지냈다.
가까운 곳에서는 작은 새 몇 마리가 종종거리며 부리에 마른풀을 잔뜩 머금고 덱 밑으로 분주히 오가고,
어디서 나타난 다갈색의 토끼 두어 마리는 앞 쪽으로 깡충깡충 뛰어오더니 두어 팔쯤 앞에서 딱 멈추고선,
별 경계도 없이 말끄러미 쳐다본다.
외려 내가 놀란 셈이다.
요놈들이 바로 그 녀석들인가 보다.
사시사철 화초와 플랜트들을 갉아대어 아내를 피곤케 하는 녀석들이다.
특히 겨울에는 양식이 부족한지 철망을 꼼꼼히 둘러놓아도 화초와 작은 플랜트들을 결딴내 놓는다고
아내는 몹시 안타까워했다.
그제야 새삼스럽게 주위를 둘러보니 작은 플랜트들의 밑동들이 플라스틱으로 모두 휘감아져 있고,
화초들과 화단 주위에는 꼼꼼히도 철망을 둘러놓았다.
아내의 세심함과 정성이 새삼 놀랍다.
무엇이 아내를 이토록 가든 일에 집착하게 했을까 ?
조그마한 동양 여자가 무거운 쏘일과 멀치를 낑낑대며 옮기는 것을 목격한 옆집 이웃 남자가 쏜살같이
달려와서는 죄다 옮겨주었다고 지나가는 말처럼 한 적이 있었다.
그렇다,
언젠가 뒤뜰에서 꿀 새를 발견하고선 흥분하여 아내에게 자랑스럽게 이야기 했던 적이 있었지.
별다른 반응이 없던 아내에게 적이 실망도 했었는데, 아마 아내는 되려 내가 실망스러웠을 것이다.
색이 바랜 아내의 정원용 고무장화가 군데군데 구멍이 나고 헤어져 있다.
이것은 날 닮아 무심한 아들 녀석이 정원 가꾸기 좋아하는 엄마에게 꼭 맞는 마더스 데이 선물이라고 나에게 귀띰했던 것이다.
혼자만의 뒤뜰에서,
땡볕에 얼굴이 그을리도록 무엇이 아내를 이렇게 힘들게 했을까 ?
헤어져 이제 더는 사용할 수 없을 것 같은 아내의 고무장화를 씻으며,
초록빛이 여문 아내의 정원과는 어울리지 않게 늦가을인양 횅한 바람이 가슴 한편에 인다.
여보,
남겨두고 온 것만큼 우리가 다시 얻은 것도 적지 않을 것이요,
이제 그만 모두 훌훌 털고 일어납시다. (May.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