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무시하지 마세요
오늘 노숙자 기사를 보게 되었다.
노숙자들의 연례 시위를 계기로 도시의 노숙자들을 심층 취재하는
얼마 전부터 시작한 연재 형식의 기사다.
몇 년 전,
내 사업장 바로 뒷문에서 노숙자를 발견하고 의아했던 적이 있었지만
이들에 대해 특별한 관심이 없었는데, 기사를 보고 느낀 점이 있어 몇 자 적어 본다.
이곳의 노숙자들은,
매년 공원에 함께 모여 텐트(천막촌)를 치고 생활하며 며칠씩 시위를 한다.
이 연례 시위의 목적은,
도시의 노숙자들과 적당한 가격의 주택 부족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것으로,
당연히 시에서는 텐트촌의 철수를 명하고,
천막촌의 노숙자들은 또 다른 공터나 공원을 찾아다니며 계속 시위를 한다.
이들에 대한 일반 시민의 공통된 생각은 철저히 개인적이다.
어떤 곳에서는 휴가를 떠난 빈집의 정원 바로 옆에서 텐트를 치고 노숙을 하기도 해서
휴가에서 돌아온 사람들을 경악케 하고,
잃어버린 물건에 대한 걱정,
쓰레기와 마약을 사용한 뒤의 위험한 주사기 처리를 걱정하는,
그래서 노숙자들이 공공장소나 개인 소유지에 대한 접근을 통제해야 한다는 수준인 것 같다.
철저히 내 개인이나 재산이 위험으로부터 보호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The Record 에서 따옴)
위의 여인은 임신한 노숙자로 도움을 청하는 사진이다.
리포터(기사 작성자)는,
금발에 푸른 눈을 가진 젊은 여인이 눈길을 끌어 인터뷰했다고 기사의 첫 줄에 쓰고 있다
- 금발에 푸른 눈을 가진 여인이 노숙자라니 관심이 갔다는 말은,
완벽한 백인 (금발에 푸른 눈)이 우월하다는 뿌리 깊은 이들의 잠재의식이라 생각해도
무방할 것이다.
이 여성은,
메노나이트 (문명을 거부하는 소수 기독교 집단) 라는 특정 종교를 가졌으며,
가족으로부터 학대와 따돌림을 받아 집을 나왔고
보호소에서 심한 구타를 당했고
보호소에서 성폭행을 당하여 임신을 했으며
직업을 가지려 했지만, 교육을 받지 못해 직장을 구할 수 없었고
읽고 쓰지를 못하여 사람들로부터 무시만 당했는데
아이를 출산하면 키울 수 없으니 입양을 해야 할 것 같다고 한다.
"많은 이들이 너무나 자주 나와 같은 사람들을 조롱하고 무시해서
직업을 가질 수 없어요.
그래서 나는 거리 모퉁이에 서서 도움을 청할 수밖에 없습니다"
위의 예는 종교, 학대, 가족, 가출, 보호소, 구타, 성폭행, 교육, 직업, 미혼모 등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쉽지가 않은 다수의 문제점을 보여주고 있다.
(The Record 에서 따옴)
또 다른 위의 여인은,
5년 전에는 평범한 생활을 했던 여인이다.
자신의 집에서 주간에는 탁아소를 운영했고
야간에는 병원과 공공장소의 청소를 하는 직업을 가졌었다.
그러나 이혼 후 집의 대출금을 갚지 못해 노숙자로 전락했다.
"이전에 나는 모두에게 도움을 주는 일을 했지만,
모든 사람은 탐욕스럽고 이기적이었습니다.
내가 그들을 도왔지만 (탁아소에서 아이들을 돌보았던)
내가 베푼만큼 그들은 나를 돕지 않았습니다.
합법적으로 집을 빼앗아 갔어요"
하지만 만약 그녀가 보호소로 돌아가는 것과 숲속의 텐트로 가는 것을
선택해야 한다면, 그녀는 매번 텐트를 선택한다.
때때로 텐트가 차갑고 축축하고 불편하지만.
"새로운 젊은 여자 노숙자가 노숙촌에 들어오면,
많은 노숙자 남자들이 그녀를 성폭행하려고 합니다.
그 젊은 여자 노숙자를 지켜주어야 하므로 나 혼자 보호소로 갈 수가 없어요.
함께 지내면 마약을 하는 여자이기 때문에 나도 마약을 같이 해야 하지만,
그녀를 지켜주는 것이 더 중요하지요"
"또한 나는 이제 일반적인 사람들과 교감 할 수가 없어요.
그들은 너무 탐욕스럽고 이기적이지요
그들을 이해시키는 것이 너무 힘이 들어요"
"야외에서 네발 달린 동물들과 지내는 것이 더 편해요,
그들은 탐욕스럽고 이기적이지 않지요.
나는 두발 달린 동물 (사람) 보다 네발 달린 동물이 더 좋아요"
두 여인이 말했듯이,
무시당하고 조롱받고 집을 잃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다.
따라서 더 운이 좋은 사람들은,
그들에게 그 고통을 추가할 권리가 없다.
다다익선이라는 말은 물질의 풍족함은 당연히 많을수록 좋다는 것이니,
풍성하고 가득 찬 것은 여유롭고 아늑하다는 말일 테다.
그래서,
욕망과 연(緣)을 털고 정진하는 구도자들의 청빈한 삶에서도
가장 어려운 것이 이 풍성하고 가득 찬 것을 비우고 내려놓는 것이라 한다.
그런데 요즈음 여러곳에서,
자주 비우고 내려놓는다는 말과 글을 보게 된다.
비우면 충만해진다는 뜻으로 보이지만,
비우고 내려놓음이 그렇게 쉽게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일까 ?
불편하게 들리는 비우고 내려놓는다는 말과 글보다는
외면받고 무시당하고 조롱받는 약한 이들에게
작은 나눔의 손길을 내미는 일이
정녕 비우고 내려놓음이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