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계(契)

단풍들것네 2018. 7. 24. 09:15

어제 국내뉴스 중 흥미 있는 기사가 하나 있네요.

일억이란 돈이 아마 쓰레기통에서 발견되었다고 하지요.

돈이 얼마나 흔한 사람인지 참으로 별스러운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돈이 넘쳐나는 사람이 아닌 저 또한 비슷한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매년 연초가 되면 절절매게 되는데요, 목돈인 세금을 납부해야 하기 때문이지요. 

궁리 끝에 조금 여유가 생기면 그때마다 서랍 밑쪽에 세금 납부용으로 

없는 셈 치고 넣어두었는데 이걸 깜빡 잊고 오랜 시간 후에 생각하게 된 겁니다. 

그걸 발견하고 얼마나 쾌재를 불렀는지 ‘계’ 탄 기분이었습니다.

 

여러분은 ‘계’라는걸 하십니까?

이‘계’에 얽힌 이곳 이야기, 조금 지난 일이지만 하나 들려드리겠습니다.



남의 이야기 하고 싶어 불룩해진 저 입술들 참 그로데스크하다.

힐끔거리며 꼭 저렇게 수군거려야 할까, 이미 쫘아 소문 나버린 일에 흉하게 눈치는 왜보나?

소문 듣는 것도 구차스럽고 언짢다.

 

계주가 사라졌다고 한다. 

계만 깨어진 것이 아니고 뭉칫돈 떼인 사람도 여럿 된다.

비즈니스고 집이고 남김없이 미리 정리했다니 눈만 껌뻑거리고 당했다는 입초시에 오를까 저렇게들 눈치 

보며 전전긍긍하는 것이다. 

피해자들 대부분 그 사기꾼과 같은 교회를 다녔고 골프멤버인 자영업 종사자들이다.

그러게, 계라는것에 왜 발을 담그고 무얼 믿고 뭉칫돈을 주고 받았을까?

 

결국에는 사기꾼으로 드러난 자의 반듯해 보였던 처신과 규모 있어 보이는 비즈니스 그리고 소속 신앙체의 

감투라는 것이 모두의 눈들을 가렸을 것이다.

민망도 해라, 계라는 것이 도대체 언제적 이야기인데.

꽤 큰 사고에 모두 쉬쉬하지만, 귀추가 주목된다. 

사법당국에 신고할지, 성질 한 가닥 하는 이가 셧건 들고 찾으러 다닐지 알 순 없지만 결국에는 흐지부지

당한 사람들만의 속앓이로 끝날 것이다.

 

사람 사는 일에는 법도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나의 말이 아니고 논어에 나오는 말이다.)

그렇다면 비즈니스에는 상도가 있어야 할 것이고, 술 마시는 데에도 주도가 있을 것이고, 

신앙인의 법도라는 것도 있을 것이고 반가의 법도도 있을진대,  

역마살 깃든 자들의 이곳 법도는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

코네디언들의 다채로운 삶이 참 애꿏기도 하다.

 

반세기 전 쯤에서나 들어봄 직한 계라는 예전의 관습이 아직도 이곳에서까지 명맥을 유지하고,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왜 일어나고 있을까?

전 세게에서 유명하다는 화상들이 형,성님하며 뭉칫돈을 주고받는지는 모르겠다.

 

논어란 공자의 말씀을 새겨 놓은 것이고, 논어가 곧 유교경전의 가장 으뜸이니 세상에 없는 것처럼 

떠받들어 모시는 우리의 관습이나 풍습이 대부분 꽁쯔의 말씀이라 보아도 될성싶다.

 

‘덕 있는 자 외롭지 않을 것이요 고로 따르는 이웃 있을진져’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벌컥 인상 긋지말고, 내가 남 알지 못함을 근심하라’

 

난해하지만 분명 논어에 나오는 말씀이다.

당최 뜬구름을 잡는 것 같지만 그럴듯 해 보이기는 한데, 이것이 문제다.

이천 년 전, 벼슬 찿아 천 리를 찾아 다니며 문전박대 당했다는 노인의 말씀에는 합리적이고 치열한 구석이

없다. 구차한 자기변명이라는 말씀이다.

금전이 수반되는 거래에 어느 듣보잡에게 덕으로 대하고 형님,성님,언니 졸랑졸랑 이웃으로 비벼댄다는

말인가.

사오천년전 근동 메소포타미아인들의 함부라비 법전에는

‘남의것 탐한자, 배상치 못하면 손모가지 짜르는 것 가지고는 택도 없다. 그냥 죽여라’고 했다.

오육백년전의 샤일록은 허벅지 살을 담보로 했지 않은가.

 

이런 사조가 몸에 베여 이것저것 따지면 쪼쟁이로 취급되고

술한잔에, 골프장 한두번 동행하고, 같은 교회의 교인이라면 그이외의 것은 아예 고려대상도 못된다.

배포는 부풀어져  형님,성님,언니 그만 십년지기가 되는것이다.

 

우울코, 불편하고, 심란하다.

이 찌질한 이민 1세대들의 남세스러운 기행은 언제까지 지속되어야 할까.   (Oct.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