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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한복 한벌

단풍들것네 2018. 7. 24. 10:52

‘ 나이 들어가며 궁기나고 후줄근한 것처럼 흉한 게 어디 있을까 ‘

‘ 나 없으면 변변히 옷이나 챙겨입을까, 주변머리 하고는 ... ‘


방한복을 새로 장만했다며 커다란 옷 봉지를 풀어 보이던 아내는 혼잣말을 한참이나 했다.

조금 낡았기는 했지만, 보온성이 좋아 추위 막기에 전혀 지장이 없어 새롭게 장만하자는 말을 흘려

들은지가 오래다.

거진 이십여 년을 애용했으니 이 한국산 방한복이 오래되기는 했다.

눈바람과 추위만 막으면 된다는 나의 생각이 아내에게는 그리 탐탁지가 않았던가 보다.

 

 “ 뒤 좀 돌아봐요, 아이고, 잘 어울리네. 옷이 날개라니까. 어때요 ? “

 “ 뭐 별로...  아직 쓸만한데 왠걸 ... “

“ 어찌 저렇게도 바뀌지 않을까, 고맙다는 말이 그렇게 인색해선,

  그럴 나이도 아니건만 고집만 센 신토불이 중늙은이니 같으니 “ 아내는 혀를 찾다.

 

겨울 같지 않게 포근한 날씨지만, 김 여사는 여고 동창회에 밍크코트를 굳이 입고 나왔다.

동창들의 선망 어린 칭찬과 부러워하는 시선들을 한껏 내려보던 김 여사,

‘뭐 별것 아니야, 우리 사위가 .. ‘

으뭉스럽게 별것 아니라는 청담동 김 여사 스타일의 내숭을 탓하는 것인지,

조그마한 칭찬에도 으레 ‘Thank you’ 라고 하는 이곳 사람들과 비교가 되는지,

낡았지만 한국산 제품이라 좋다며 조금 더 사용하겠다는 신토불이를 탓하는 것인가,

고집만 센 신토불이 중늙은이라고 핀잔을 했던 아내의 속내가 궁금하다.

 

칭찬을 액면대로 받아들이고 고마워하는 이곳 사람들의 태도와

칭찬을 ‘뭐 별것 아니야’ 라는 겸양(?)으로 대하는 태도를 생각게 하는 나의 방한복 구입이다.

사촌이 땅을 사면 속이 쓰리다고 하니 상대방 배 아프지 않게 배려하는 의중이 담긴 ‘뭐 별것 아니야’ 라는 

내숭이 어쩌면 바람직한 태도라 할 수 있을까 ?

 

‘ 말(言語)은 생각과 의지를 상대에게 전달 하려는 음성의 표현 ’ 이다.

따라서 명료한 표현은 말에서 가장 으뜸의 필요조건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연말,

전망 좋은 곳에서 모처럼 한 이틀 휴식을 취하라며 딸아이가 호텔을 예약했다고 했는데,

몇 가지 일이 겹쳐 갈 수 없게 되었다.

아이에게 미안한 일이고 아내도 언짢아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딸아이가 확인 전화를 했다.

 

“아빠, 정말 못가요 ?” 예약을 취소해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응, 그럴 것 같은데”

“아빠, 응 이나 Yes 말고 정확하게 문장으로 이야기해 보세요”

“  엄  마 , 아  빠  못  간  다  ”

 

딸아이는 중학 삼 학년 때 이곳으로 왔다.

가끔 나도 일상에서 잘 쓰지 않는 고사성어를 불쑥 사용하여 나를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때도 있으니

한국말이 전혀 불편하지 않은 아이다.

그 아이가 나의 대답을 재차 명확한 문장으로 확인했다.

 

아이와의 통화가 새삼 우리말에 대해서 생각을 하게했다.

 

영어에서는,

너, 배 고프냐 ?             (Are you hungry?)

안 고프면                 (No, I’m not)   

고프면                    (Yes, I am)     

 

너, 배 안 고프냐?           (Aren’t you hungry?)

안 고프면                 (No, I’m not)   

고프면                    (Yes, I am)     


질문의 형태(긍정, 부정이든)에 상관없이 (질문자의 의중과 무관하게)  나의 생각이 중요하다.

배가 고프면 Yes, 안 고프면 No 이다. 

명료하고 간단하다, 즉 나의 의지에만 근거하여 답하면 되는 것이다.

따라서 말의 기본기능인 의사전달과 함께 더불어 말하는 주체인 ‘나’ 가 기준이고 중심이다.

 

우리말은, 

너, 배고프냐 ?

안 고프면                   (아니요, 안 고픕니다.)   

고프면                   (네, 고픕니다.)     


* 긍정의 질문에 대한 대답은 영어, 우리말이 동일하다.

 그런데 부정의 질문에 대한 대답이 묘하다.

 

너, 배 안 고프냐  ?

안 고프면                (네, 안 고픕니다)           --  안 고픈데 네 라고 하고

고프면                 (아니요, 고픕니다)          --  고픈데 아니요 라고 한다.        

 

즉 우리말은 상대방이 어떻게 물었느냐가 중요하다.   

긍정의 질문에 나의 의지가 긍정이면 긍정, 부정이면 부정으로 답하고,

부정의 질문에 나의 의지가 부정이면 긍정으로 답하고, 나의 의지가 긍정이면 부정으로 답해야 한다.

이 문장을 쓰면서 나 자신도 무슨 말인지 혼란스럽다.

요약하면 부정문의 질문에 대한 우리말은 영어와 달리 사뭇 다른데,

몸에 벤 우리말 이건만 조각조각 따져보니 꽤 복잡하다. 무슨 이유로 우리말이 이렇게 복잡한가 !


말하는 주체인 ‘나’ 가 기준이고 중심이기 보다는 상대방의 의향을 헤아리고 배려하는 관습의 일례인가,

칭찬에도 ‘뭐 별것 아니야’ 라고 하는 겸양의 미덕일까 ?

 

 

Mr. K의 장례식에 다녀왔다. 

이곳 본토박이며 큰 사업체를 운영했던 사람이다.

65세 한창나이에 급성폐렴으로 병원을 찾은 다음 날 유명을 달리했으니 가족들과 그가 운영하던 

사업체 (자동차 딜러)의 직원들이 무척 황망 서러워했다.

특히 나의 비즈니스에 큰 도움을 주었던 사람이라 문상에 무척 신경이 쓰였다. 


생소했다.

이름 붙인 조화도 진열하고, 

부조금도 건네며 상주와 맞절도 하고 장례식장에서 밤샘도 해야 인사가 되고 체면치레도 되는 것일 텐데.

문상 기간은 두 시간씩, 단 두차례 뿐. 

관속에 안치된 고인을 대면한 후 맞절 대신 유족들과의 가벼운 포옹이 전부,

나머지 시간은 오롯이 고인의 생전의 모습을 기억할 수 있는 유품, 사진과 동영상으로 추모하는 시간이었다.

부조금은 생전에 애착을 가지고 직함도 가졌던 유소년 아이스하키 단체 또는 

암쎈터 앞으로 도네이션 바란다고 했다.

 

‘나’를 칭찬했으니 그것을 고맙다고 하고,

‘나’에게 질문을 했으니 ‘나’를 기준으로 대답하고, 

죽음까지도 철저히 ‘나’ 가 주체인 셈이다.

 

산다는 것, 사람 사는 것이 사는 곳 따라 조금씩 다름은,

오랜 세월 나름의 방식대로 쌓아올린 관습들이니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렇지만 부조금을 대하는 우리의 관습은 시사하는 점이 크다.

‘나’가 주체인 이곳 사람들이지만 나의 부조금은 타인을 위하는 것이 되고,

‘나’보다는 상대방을 배려하는 우리는 나의 부조금 만큼은 ‘나’의 것이 된다. 

말에서 조차 상대방을 배려하는 우리의 관습이 마지막 죽음 앞에서는 그만 흔들려 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뇌물성 부조금과 유족들 간의 다툼이 일어나기도 하고.

 


방한복 한벌탓에 여러 생각이 더는 하루다.  (Jan. 2016)